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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냇 킹 콜 × 무라카미 하루키  

작성자 JAZZ PEOPLE(ip:)

작성일 2019-03-29

조회 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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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민용



냇 킹 콜의 노래 중에서 내가 처음으로 들은 것은 ‘Pretend’ ‘Too Young’ 같은 스위트하고 로맨틱한 히트 송이었다. 그런 노래가 트랜지스터 라디오(당시의 최신 상품이다)에서 흘러나왔다. 1960년 전후의 일이다. 

- <재즈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에세이>에서 “냇 킹 콜이 노래하면 그 어떤 노래든 신기할 정도로 달콤하고, 애수를 띠었다”고 이야기한다. 1960년이라 하면 냇 킹 콜의 황금기는 서서히 저물어가고 그의 삶도 얼마 남지 않은 시기다. 1949년생인 하루키는 열두 살 남짓 소년이었다.


앨라바마주 몽고메리에서 1919년 태어난 냇 킹 콜은 1936년 베이시스트인 형 에디 콜의 싱글에 피아노를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피아노, 베이스, 기타로 이루어진 냇 킹 콜 트리오로 활동하던 중 1940년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한 ‘Sweet Lorwine’이 히트하며 보컬리스트로 인기를 얻었다. 이후 1946년 ‘(I Love You) For Sentimental Reasons’, 1948년 ‘Nature Boy’, 1950년과 1951년 ‘Mona Lisa’ ‘Too Young’이 각각 빌보드의 넘버원 송(No.1 Song)에 오르며 트래디셔널 팝 보컬리스트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 인기는 1950년대를 지나 1960년대 초까지 이어졌으나 1965년, 46세 나이에 폐암으로 사망했다.


하루키에게 냇 킹 콜은 뭉근한 애정과 그리운 기억이다. 최신 스테레오로 냇 킹 콜의 노래에 귀 기울이던 소년 시절처럼. 그가 쓴 세 편의 장편소설 <양을 쫓는 모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1Q84>에서 냇 킹 콜의 음악을 만날 수 있다. 1982년 발표한 첫 번째 장편 소설 <양을 쫓는 모험>에서 ‘나’는 등에 별 무늬가 있는 양을 찾아 ‘쥐’(친구의 별명이다)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홋카이도 별장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집으로 들어선 ‘나’는 책장 옆 장식장에서 플레이어와 레코드를 발견하고 아무 레코드나 턴테이블에 얹는다. 그러자 냇 킹 콜이 노래를 부른다.  





책장 옆에는 역시 붙박이로 된 장식이 있어, 거기에는 196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북셸프형 스피커와 앰프와 플레이어가 놓여 있었다. (중략) 나는 진공관 앰프의 파워 스위치를 켜고 아무 레코드나 골라서 바늘을 얹어 보았다. 냇 킹 콜이 ‘국경의 남쪽(South Of The Border)’을 부르고 있었다. 방 안의 분위기가 1950년대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 <양을 쫓는 모험>



쥐의 별장에서 흐르던 ‘South Of The Border’는 10년 뒤 발표한 1992년 작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으로 이어진다. 냇 킹 콜이 부른 곡을 모티프로 한 장편소설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하지메)는 시마모토의 집 거실에 있는 신형 스테레오 장치로 음악을 듣기 위해 그녀의 집에 놀러 간다. 시마모토가 조심스레 레코드를 얹는 모습,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두근거림은 마치 첫사랑처럼 조심스럽게 묘사된다. 그곳에서 ‘나’와 시마모토는 ‘국경의 남쪽’이라는 말에 신비로운 울림을 느끼며 ‘South Of The Border’를 듣는다.


그들은 냇 킹 콜의 또 다른 노래 ‘Pretend’도 즐겨듣는다. 아니, 의미도 모른 채 입내로 부를 만큼 듣고 불렀던 곡이다. 프리텐드 유아 해피 휀 유아 블루, 잇 이즌 베리 하드 투 두(Pretend you’re happy when you’re blue, It isn’t very hard to do). 고통스러울 때에는 행복한 척해요. 그것은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에요. 훗날 재회한 ‘나’와 시마모토가 아련한 기억과 그리움 속에서 “냇 킹 콜이 ‘Pretend’를 부르기 시작하자, 시마모토도 작은 목소리로 옛날에 곧잘 그랬던 것처럼” 노래를 읊조린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의 어느 날, 가스스토브의 불꽃이 어렴풋이 붉게 방을 비추던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내가 말을 끝내자, 그녀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스토브의 불꽃은 타오르고, 냇 킹 콜은 오래된 노래를 계속 부르고 있었다. 

-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흐르는 아련함은 냇 킹 콜 외에도 빙 크로스비의 크리스마스 캐럴, 듀크 엘링턴 [Such Sweet Thunder]에 수록된 ‘The Star-Crossed Lovers’, 영화 <카사블랑카>의 사운드트랙 ‘As Time Goes By’, 스탠더드곡 ‘Enbraceable You’ 등으로 이어진다. 주인공이 재즈 음악을 들려주는 고급 바 ‘로빈스 네스트’(Robin’s Nest)를 운영하고 있어서 재즈는 더욱 자연스럽게 흐른다.  


<재즈 에세이>에 언급했듯 무라카미 하루키는 과거 ‘South Of The Border’를 들었던 기억으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라는 소설을 썼다. 나중에 냇 킹 콜이 ‘South Of The Border’를 부르지 않았다(적어도 녹음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상의 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 사실은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1992년 클로드 윌리엄슨 트리오가 일본 비너스 레이블에서 [South Of The Border, West Of The Sun]을 발표한 것이다. 첫 번째 곡이 ‘South Of The Border’고, 마지막 곡이 클로드 윌리엄슨이 소설에 영감을 얻어 작곡한 ‘West Of The Sun’이다. ‘Robbin’s Nest’, ‘Embraceable You’, ‘Corcovado’, ‘As Time Goes By’ 등 소설에 등장하는 스탠더드곡을 연주했다. 콘셉트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선명하고 유려한 피아노 트리오 앨범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간이 흘러 하루키는 베이시스트 빌 크로와의 인연으로 2007년 클로드 윌리엄슨 트리오 [Autumn In New York]의 라이너노트를 쓰게 된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은 이렇게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남겼다.


하루키 소설에 한참 동안 냇 킹 콜의 음악이 등장하지 않다가 다시 10년 뒤인 2009년 장편소설 <1Q84>에서 그를 떠올린다. 아오마메가 바에 들어왔을 때 피아노와 기타의 젊은 듀오가 ‘Sweet Lorraine’을 연주하고 있다. “냇 킹 콜의 오래된 레코드 복사판이지만 나쁘지 않다”는 문장이 이어진다. 그런데 왜 그가 부른 노래가 아니라 냇 킹 콜 스타일의 카피곡이 등장할까. 두 작품과 달리 냇 킹 콜의 노래에서 연상되는 아련함도 없다. 그런데 ‘Sweet Lorraine’의 노랫말을 들여다보면 나의 청혼에 사랑스러운 로레인이 ‘예스’라고 답하는 상상과 설렘이 가득하다. 이 곡은 바로, 아오마메에게 보내는 러브송이었던 것이다.  


유년의 기억은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스며든다. 잊고 있다가도 작은 계기로 물밀 듯 밀려오는 기억을 만들어낸다. 하루키에게도 냇 킹 콜은 그리운 기억이었을 것이다. 그 기억으로 간혹, 냇 킹 콜의 간지러울 만큼 로맨틱한 노래를 꺼내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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