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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색소포니스트 진푸름  

작성자 JAZZ PEOPLE(ip:)

작성일 2019-08-16

조회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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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인터뷰 이기준


듣고, 흐름을 타며 완성한 감각의 언어


미국 유학 시절 정말 잊지 못할 일 중 하나는 오넷 콜맨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건넨 ‘어떻게 하면 음악을 음악답게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친절한 답변이었다. ‘당신과 다른 연주자들을 들어야 해요. 흐름을 타고 날아올라야죠. 듣고, 당신을 듣고, 듣고 나아가요.’ (시간이 지나 그의 음악을 이해하며 깨닫게 되었는데, 그는 문법을 무시하고, 어법과 문장에 적합하지 않은 단어를 자주 썼다. 참으로 오넷 콜맨답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는 진정으로 음악을 (잘) 들을 수 있다면, 굳이 음악을 하지 않아도 행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말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색소포니스트 진푸름은 듣기 위해 노력하는 연주자다. 그의 음악은 항상 어디론가 흐른다. 그리고 완전한 즉흥성에 다가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감각을 개방하고, 스스로를 듣는다. 의식의 흐름에 기반을 둔 그의 연주는, 자신만의 음악적 언어를 위해 이성적 판단을 과감히 차단하고, 흘러가는 연주에 체득한 재즈의 언어로 반응한다. 감각의 언어로만 표현한다. 캐논볼 애덜리가 그랬고, 케니 가렛이 그랬다.


그녀는 음악을 향한 자신의 태도, 앞으로 계획하고 보여줄 음악적 행보가 무엇인지가 분명한 연주자다. 본인이 어떤 연주자로 성장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녹록지 않았던 유학 시절과 어려웠던 시간들, 앨범을 녹음하기까지의 힘겨운 자신과의 싸움, 가족을 향한 깊은 애정. 그리고 여성 재즈 연주자로서 뉴욕 재즈 씬의 큰손들과 함께 연주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며 오래간만에 다음 앨범이 궁금해지는 연주자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인터뷰는 즐겁고 편안했으며 그녀는 위트가 넘쳤다. 그러면서도 음악을 향한 열정을 이야기할 땐 날이 선 격렬함과 당돌함을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진푸름, 그는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무언지 정확히 알고 연주하는 색소포니스트다.


이 뉴욕 땅에 같은 언어로 대화 할 수 있는 관악주자의 등장이 무척이나 반갑고 기대된다.




음악에 빠지다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음악을 좋아해서 처음에는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어요. 근데 연습을 너무 많이 시키니까 잘 안 하게 되더라고요. 사실은 선생님들이 시키는 연습 방법이 재미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만두고 잊고 지냈어요. 제가 중학생 때 우연히 옆 여자고등학교에서 공연이 있어 친구와 함께 가서 같은 또래 여자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연주하는 것을 실제로 봤고 너무 멋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집에 와서 부모님께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지요.




뭐라고 반응하셨나요.


제가 미친 줄 아셨죠. (웃음) 하루아침에 갑자기 뭘 하겠다고 하니까. 아빠가 걱정이 되시니까 주변에 아는 분 중에 음악 선생님을 찾아보시다가 색소폰 선생님을 소개해 주신 거예요. 처음엔 잘 모르고 시작했는데 너무 재밌더라고요. 사실, 부모님은 저러다 말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켰는데, 제가 너무 재밌어 한 거죠. 그렇게 음악을 하게 된 거예요. 처음엔 클래식 색소폰을 했어요.




그러니까 처음부터 색소폰으로 한 거네요. 그게 언제였나요.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국내 여건이나 정서로 볼 때 색소폰이란 악기를 하게 된 건 좀 의외인데요.


흔한 악기는 싫고 다른 악기는 잘 모르는데, 색소폰 선생님이 아버지 친구분의 아시는 분이어서 그냥 한번 배워봐라 하는 식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근데 해보니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제가 친구들이랑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데, 그 이후에 매일 연습실에서 악기만 할 정도로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럼 재즈는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제게 한국식 음악교육 방식이 잘 안 맞았어요. 잘해도 혼나고 못해도 혼나잖아요. (웃음)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 켄지 오메 선생님을 만나서 배우게 됐어요. 처음부터 재즈를 하게 된 건 아니고 악기를 배우면서 재즈도 배우게 되었어요. 저희 집이 전북 익산이거든요. 백제예술대로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으러 가고 방학 때는 가끔 서울로도 가고 그랬어요.




그 후에 경희대 포스트모던과를 졸업하셨지요. 학교 졸업 후엔 많은 활동을 했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연주나 공연이 있나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재즈앤블루스페스티벌에 초청되어 연주했던 것과 자라섬재즈페스티벌에서 디디 브릿지워터와 함께 연주했던 것 그리고 2012년 <재즈피플>의 라이징스타에 뽑혀 공연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뉴욕에 도전하다




말씀하신 것처럼 국내에서 많은 활동을 하던 중이었는데 유학을 하러 가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운이 참 좋았어요. 대학생 때부터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20대 초반부터 재즈 씬에 들어가 많은 좋은 뮤지션들을 만나고 연주할 기회도 많았거든요. 어느 순간부터는 어떻게 저 스스로를 발전해 나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스스로 도태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더 나아가고 싶은데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거기에 대한 막막함이 생겼어요. 음악적인 내실을 다져야 하는데 씬이 작고 연주자들이 많지 않다 보니까, 필요에 따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게 되었어요. 저 자신의 색깔을 찾아서 제가 잘할 수 있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 음악들을 만들어야 하는데 우선은 생활을 해야 했어요. 나중에는 내가 내고 싶은 목소리가 무언지 내가 누군지에 대한 갈증이 많이 생겼어요. 그리고 궁금하잖아요. 뉴욕 같은 큰물에 가면 어디까지 내가 들어갈 수 있는지요.




그럼 한국에서 공부하고 연주하던 것과 미국에 유학을 와서 연주하고 공부하는 것에서 가장 크게 느꼈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처음 오자마자 느꼈던 다른 점은 음악적 깊이였어요. 깊이가 달랐어요. 제가 여태껏 음악을 하며 쌓아온 것과 여기서 공부해온 친구들의 차이에서 오는 깊이가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너무 자연스럽게 음악을 했던 거예요. 저희처럼 ‘이걸 해야 해’ 해서 하는 것보다 어릴 때부터 자기가 좋아해서 하고 더 오픈된 기회들이 더 많았고, 많은 것을 접한 데서 오는 음악적 깊이라고 할까요. 악기를 이해하는 깊이도 깊더라고요. 악기를 다루는 교육을 워낙 오래 받은 친구들이 많았어요.


일단 거기에서 많이 놀랐어요. 예를 들어 음악 얘기를 하더라도 굉장히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요. 어찌 보면 저는 여기서 공부한 친구들에 비해 늦게 시작해서 음악을 한 건데 정말 다양하고 깊은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에 대해 많이 놀랐어요. 연주를 해보면 이 친구들은 정말 재즈를 정말 매우 오래 음미했고, 많은 생각을 해왔고, 오래 들어 왔었다는 그런 게 느껴졌어요. 제가 여태까지 해왔던 것이 수박 겉핥기처럼 느껴질 정도로요. 여기 애들은 진짜 밑에서부터 차곡차곡 밟아 올라온 느낌이었어요. 일단 거기서 느껴지는 차이가 너무 컸어요. 그리고 교육적인 시스템이 잘 정리된 편이에요.


그래서 제가 원하는 것이 알고 배우고 싶은 것이 명확하다면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너무 많은 거 같아요. 한국에서는 보통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성장하잖아요. 그렇다 보니 남에 의해서 끌려가는 듯한 게 있어요. 저도 좀 그랬던 것 같고요. 여기서는 모든 것을 자기 주도적으로 해요.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쌓이는 음악적인 역량이 있고요. 교육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몰라서 여기 왔어’보다는 ‘나는 이거 배우고 싶어서 여기에 왔고, 나 이런 활동을 하려고 여기 왔어’라고 하는 게 더 명확하게 통해요. 다 어린 친구들인데, 그런 것들이 좀 충격이었지요.




처음에 오자마자 맨해튼스쿨 석사 과정을 바로 하신 건가요. 버지니아에도 좀 머무르셨지요.


네. 2015년 뉴욕에서 석사를 2년을 하고 버지니아에 가서 1년 있다가 다시 돌아오게 됐어요. 뉴욕에서 저 혼자 공부하고 남편은 버지니아에 있었어요




그럼 다시 뉴욕으로 오게 된 건.


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이를 갖게 됐어요. 아이를 낳고 버지니아에서 좀 쉬면서 있다가 온 가족이 뉴욕으로 오게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저 때문이었죠. 학생으로 있는 2년 동안은 활동에 제약이 있거든요. 외부에서의 프로페셔널한 활동은 할 수가 없어요. 학교 공부하느라 뉴욕 씬에 들어갈 노력을 많이 못 했어요. 또 졸업 후엔 바로 버지니아에 내려갔잖아요. 항상 아쉬움이 있고 음악 활동을 좀 더 누려 봤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뉴욕에서 공부하며 영향을 받은 선생님들은 어떤 분들이었나요. 그리고 본인이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던 일들이 있었다면.


많은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얘기할 사람들이 많아요. 사실, 처음 학교에 입학해서 좋았던 것이 열네 번의 개인 레슨을 반으로 나누어 다른 선생님께 신청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색소포니스트 도니 맥캐슬린 선생님과 1/2을 공부했고 다른 선생님을 찾다가 짐 맥닐리 선생님과 공부했어요. 맨해튼스쿨이 공부를 정말 많이 시켜요. 특히 곡을 많이 쓰게 해요. 한국에서는 연주만 하다가 갑자기 곡을 써오라고 하시니까 좀 막막한 거예요. 그래서 저도 작곡을 좀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짐 맥닐리 선생님과 작곡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매번 곡을 써오라고 하셨어요. 곡을 써가면 제가 쓴 곡을 매번 같이 연주하는데 그 시간이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고 제일 재밌기도 했어요. 진짜 그 선생님이 많은 영향을 주셨어요. 곡을 써가서 선생님과 연주하는 것이 진짜 재미있고 제가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또 그 선생님께서 가르치시는 다른 과목과 연계해서 공부하면서 빅밴드나 오케스트레이션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도니 맥카슬린 선생님에겐 새로운 리듬이나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만들어내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제가 생각해 보지 못했던 리듬들을 클라베 악기로 연습하는 방법, 클라베 리듬을 사용해서 곡을 쓰는 방법 같은.


연주하면서 ‘아, 이 부분에서는 다른 식으로 연주할 순 없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분이 워낙 다이내믹한 리듬으로 연주하는 분이어서 제게 또 다른 도전이 되었던 것 같아요.




유학 와서 경험하는 공통적인 것 중에 다른 동료 친구들과의 연주나 같이 공부하면서 조급해지거나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있는데, 본인은 어땠나요.


항상 그랬죠. (웃음) 특히, 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제가 들었던 수업에 아시아인 학생들이 없었어요. 빅밴드나 라지앙상블 밴드에 들어가면 아시아인은 저밖에 없었어요. 여자도 저밖에 없었고요. 아무도 제게 관심이 없고, 문화적인 이해도 많이 없었던 상태고, 또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지 괜히 실수라도 하면 저만 부각되는 것 같았어요. 아무튼 자격지심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긴장을 진짜 많이 했었고, 1학년 내내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같아요. 잠을 자도 의식이 항상 깨어 있는 거 있잖아요. 항상 긴장해서요, 연주하러 가면 떨렸어요. 제가 원래 잘 안 떠는 사람인데 진짜 온몸의 피가 마르는 것 같은 거예요. 진짜 학교 첫 학기는 매일 눈물로 밤을 보낸 것 같아요. 아, 그때 생각하면 진짜 힘들었어요. 아마 평가받는다고 생각했고 나도 자신을 평가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더라고요.





그럼 그런 과정을 극복 할 수 있었던 계기나 힘은 무엇이었나요.


가족이었어요. 남편은 저를 믿어주고 항상 제가 음악 하는 것을 서포트해주는 사람이에요. 남편과 떨어져 있으면서 진짜 학교 첫 학기는 매일 눈물로 밤을 보낸 것 같아요. 근데 어느 날 남편이 ‘당신이 원해서 가서 하는데 행복하지 않을 만큼 그렇게 힘들면 당장 짐 싸고 내려와. 포기해. 난 네가 성공하길 바라서 보낸 게 아니야’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때 내가 정말 여기서 버텨봐야지 하는 오기 같은 게 생기더라고요. 남편을 생각해서라도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절 잡아준 것 같아요.




남편분이 많은 영향을 주는가 봐요.


엄청나죠. 용기를 많이 줘요. 음악을 너무 좋아하고 재즈 팬이고 제가 가장 재밌고 편하게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상대이기도 하고요. 저를 많이 도와주고 싶어해요. 남편이 비즈니스 전공자여서 제가 필요한 부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어요.




한국에서부터 연주하면서 음악적인 부분에서 본인이 영향받은 연주인은 누구였나요. 사운드라든가, 솔로라든가요. 연주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콜트레인 음악을 많이 들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켄지 오메 선생님을 만나서 제가 재즈를 시작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재즈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콜트레인의 앨범들을 처음 듣고 나서부터였어요. 그전에는 앨범을 들어도 잘 몰랐어요. 그리고 제가 영어도 잘 못 했던 때라 켄지 선생님에게도 물어보질 못했었어요. 근데 어느 날 콜트레인을 듣는데 전율이 느껴지면서 ‘어, 어떻게 이런 음악이 있지?’, ‘왜 내가 전에는 이걸 몰랐지?’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에너지와 사운드 그 강렬한 느낌에 빠져서 이후에 앨범들을 정신없이 찾아보고 듣기 시작했어요. 콜트레인 음악의 화성이나 라인보다는 그가 만들어내는 사운드에 더 많이 매료되었던 것 같고 지금도 곡을 쓰거나 밴드를 만들어 곡을 연주하는 상상을 할 때 좋은 예가 되고, 그가 만들어낸 사운드를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제가 재즈에 빠질 수 있는 좋은 영향을 준 사람이죠.




그러면서도 본인은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잖아요.


콜트레인을 좋아하면서 왜 테너 색소폰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 제가 알토 색소폰을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콜트레인 계열을 따라가는 연주자들, 좀 더 모던한 케니 가렛 같은 연주자들을 처음에는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저는 점점 더 비밥 쪽으로 들어가면서 알토 사운드와 알토가 가지는 언어에 대한 고찰을 많이 하면서 캐논볼 애덜리나, 비밥이면서 소울풀하고 블루지한 언어를 다시 익히기 시작한 것 같아요.




진푸름의 리얼 블루



이번 앨범에서 마지막 곡을 듀오로 연주한 발라드로 마무리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콜트레인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가 연주하는 발라드 감성과  거기서 나오는 스피릿이에요. 이 앨범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으로 감사하는 그런 기분으로 연주했어요. 실제로도 이 곡은 다른 곡들을 다 끝내고 정말 힘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때 제가 이 곡을 녹음하자고 했거든요. 그리고 리드가 깨져서 소리가 제 소리가 아닌 ‘트르르, 트르르’ 하는 소리가 나더라고요, 근데도 너무 힘들고 정신이 빠져서 소리가 그렇게 나는지도 몰랐어요. 제가 다섯 트랙을 남겼는데 첫 번째 트랙에 크랙이 났거든요. 근데 그 느낌이 너무 좋은 거예요. 마치 여기에 모든 것을 쏟은 것 같은 의미를 주더라고요. 그냥 이걸 남겨야겠다고 생각해서 그 첫 번째 트랙을 싣기로 했어요.




앨범에 관해 좀 얘기해볼게요. 먼저 본인이 생각하는 앨범의 만족도 어느 정도인가요.


아쉬운 점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상황적으로 앨범을 낼 만큼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때가 제 가족이 이사하고 제 아기가 이앓이를 했어요. (웃음) 남편이 매주 출장을 가는 변화를 겪는 과정 중에 있어서, 진짜 너무너무 힘든 시기였거든요. 그때 애를 업고 연습하고 했어요. 그러면서 ‘아, 이렇게 연습해서 앨범 내겠냐, 그 어느 때보다 부족한데’, ‘그래도 지금 가장 나다울 때 나를 남기자, 지금 안 하면 앞으로도 못 한다, 뭐라도 할 수 있을 때 감사하며 하자’라고 생각하면서 앨범 작업을 했어요. 내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도 앨범을 만들었다는 거기에 대한 만족은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작업 전에 앨범에 대한 구상을 많이 하잖아요. ‘누구를 데려와서 이런 사운드를 만들겠다’, ‘내가 이런 곡을 써서 누구와 연주하면 잘 어울릴 것이다’ 같은. 이런 구상에 대한 확신이 있었는데 그런 부분이 잘 맞아서 시간 낭비를 덜 하고 이른 시일에 좋은 결과를 낸 것도 만족해요. 진행해온 상황이나 뮤지션십이나,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만, 크게 생각하면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편이에요.




앨범에 콘셉트를 소개한다면 어떻게 얘기해줄 수 있나요.


타이틀을 ‘리얼 블루(Real Blue)’라고 한 거는 그게 제 이름을 표현할 수 있어서예요. 제 이름이 진푸름이잖아요. 제 이름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리얼 블루’가 ‘나’라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블루라는 의미가 재즈하고 관련이 있기도 하고요. 타이틀처럼 이 앨범은 저에 관한 앨범이에요. 미국에서 여성으로서, 재즈 뮤지션으로서, 이민자로서 살아가며 마주치게 되는 삶의 여러 부분, 좋은 일, 재밌는 일 또 어렵고 힘든 일 등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저의 삶을 담아낸 앨범이에요.




피아노를 연주한 제레미 마나시아가 총괄 프로듀서인 것이 눈길을 끄네요.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제레미가 돈을 투자해서 앨범이 나온 건 아니고요. (웃음) 제레미는 제가 다니던 맨해튼스쿨 선생님이었어요. 직접적으로 배운 건 아니지만 이래저래 마주치며 대화할 일이 많았어요. 연주가 좋은 건 물론이고 사람이 참 편하고 겸손해요. 제가 항상 눈여겨보았던 연주인 중 하나였고 자신의 학생이 아님에도 볼 때마다 제가 학교생활하고 공부하는 데 용기를 주고 관심을 가져주었던 선생님이었어요.


앨범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이분과 연주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미국에서 처음 앨범을 내는 것이고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놓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먼저 물어봤어요. 만약 네가 프로듀서를 한다면 그 역할이 무엇일지를 물었는데 ‘너 외에 또 다른 귀를 갖는 거라 생각한다’는 그의 대답이 제가 생각한 방향과 비슷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같이하게 됐어요.




그럼 어떤 역할은 한 건가요.


실제로 곡을 쓰고 곡의 모든 음악적 방향은 제가 다 결정했지만 제가 생각하지 못한 미묘한 음악적 부분들을 도와줬어요. 그러면서 같이 연습하고 음악에 대한 견해를 서로 나누었는데, 언제부턴가 같이 음악을 만들어나가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현지에서 레이블을 소개해주고 선택하는 과정에도 조언을 많이 주셔서 제가 옳은 선택을 하는 데 많이 도움을 주셨어요.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음악적으로 놓치는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인가요.


음악적으로 디테일하게 들어가 보니 어떤 부분은 제가 의미 없이 음악적으로 펼쳐 놓은 것이 많더라고요. 좀 정리가 덜 된 것 같은 느낌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막막했었거든요. 그리고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런 일들 안에서 물어보고 의견을 받으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효과적으로 일들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받았어요.




같이 연주한 친구들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어떤 구상으로 각 연주자를 선택했는지도 궁금하네요.


제레미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제가 좋아하는 연주자이고 앨범 작업 전에도 그의 연주를 보러 자주 갔었어요. 베이스를 연주한 루크는 떠오르는 신예인데, 러셀 말론, 지미 히스, 베니 골슨 밴드에서도 연주했어요. 제 친구가 세션에 놀러 오라고 해서 갔다가 같이 연주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나중에 녹음하게 되면 저 친구랑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연주자예요. 드럼을 연주한 윌리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연주자예요. 개인적으로 알진 못했는데 제가 제레미에게 드러머는 쓴다면 누가 적합할 것 같은지 물어보니 윌리를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윌리에게 물어봤어요. 학교에서 만나게 된 보컬리스트 사베스는 독일에서 주목받는 신예 보컬리스트예요. 이 앨범의 녹음이 좀 급하게 진행되어서 모든 사람의 스케줄이 맞을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모두의 스케줄이 맞았고 모든 게 부드럽게 잘 진행되었어요.




작년 2018년에 ‘메이드 인 뉴욕 재즈 컴피티션’에서 파이널리스트로 올라갔어요. 어떤 계기로 참여한 건가요.


사실, 미국에서 뭔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있던 중에 시도해본 건데 좀 찾아보니까 제가 나갈 수 있는 컴피티션이 거의 없었어요. 나이도 걸리고요. (웃음) 주로 20대 초중반을 대상으로 하는 컴피티션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제가 나갈수 있는 곳을 물색하다 나이 같은 제한이 없는 이곳을 발견했어요. 이 대회가 특이한 것이 영상을 보고 투표를 받아 파이널리스트를 뽑는 대회라는 거예요.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파이널리스트까지 갔는데 수상은 못 했어요. 그리고 한참 후에 그 대회 갈라 콘서트에 초청됐다고 연락이 왔어요. 트라이베카 퍼포먼스 센터에서 드러머 알 포스터, 존 리 같은 대가들과 연주하고 만나는 기회가 되어 제게는 좋은 경험이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공연에 초대되어 영광이었지요.




나이 때문에 컴피티션을 시도할 기회가 지나간 것은 아쉽네요.


맞아요, 그래서 나이가 어린 친구들에게는 많은 컴피티션을 나가라고 조언해주고 싶어요. 저는 어릴 때 잘 몰라서 기회를 놓쳤는데, 상을 타든 못 타든 훌륭한 뮤지션들을 만나고 다른 좋은 기회를 얻는 통로도 생기고 다양한 걸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쉬워요.




이번 앨범 가운데 본인의 솔로 연주가 가장 맘에 드는 곡이 있다면 어떤 곡인가요.


(웃음) 이게 재밌는 게 어쩔 땐 괜찮은데 또 어쩔 땐 미치겠어요. (한참 생각) 고르기 어려운데, 글쎄요. 세 번째 트랙 ‘The Song Of Silence’가 제가 생각했던 사운드 대로 나온 것 같아요.




보통 재즈 녹음에서 뮤지션마다 연주하는 테이크가 다 다르죠. 본인은 곡당 몇 테이크를 녹음했나요.


저는 보통 두세 테이크 정도 녹음했어요. 5번 테이크까지 간 트랙도 있지만요.




녹음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 어려웠던 점은 뭐였나요.


하루에 모든 곡을 녹음하다 보니 집중력이나 체력에 한계가 오더라고요. 특히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연습하고 항상 운동했는데도 체력에 아쉬움은 좀 있었어요. 녹음 자체는 아주 부드럽게 진행됐어요. ‘잘하는 연주자들이니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이미 녹음하기 전에 연주할 음악에 대한 이해도가 좋아서 크게 문제는 없었던 거였어요. 녹음은 편안하게 잘 진행됐죠. 많이 떨릴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괜찮았어요.




그럼 가장 좋았던 부분은요.


가장 좋았던 것은 ‘내 선택이 옳았다’였어요. 내가 한 모든 선택에 모두 만족했다는 거예요. 녹음하면서 연주자의 연주 스타일 등 때문에 발생하는 여러 돌발상황이 있는데, 그런 거 없이 제 선택이 옳았고 모든 것이 제가 그린 그림 안에서 흘러갔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어요.




앨범에 두 개의 스탠더드곡 ‘Night And Day’, ‘Speak Low’를 녹음했는데 선곡에 특별한 의미나 이유가 있나요.


저는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그냥 떠올랐을 때 작곡이나 편곡을 하는 편이거든요. ‘Night And Day’도 자연스럽게 모티브들이 떠올라서 편곡한 거고 ’Speak Low’는 제가 즐겨 연주하는 스탠더드곡인데 그냥 덜 익은 사운드로 담고 싶어서 그냥 흐르는 대로 연주했어요.




타이틀곡인 ‘Trembling Forward’는 어떤 곡인가요.


이 곡이 제 나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인데요. 이민자로서, 여성으로서, 아이의 엄마로서 겪었고, 넘어지고 힘겨워하면서도 다시 나아가는 저와 제 가족의 삶에 관한 곡이에요. 동시에 제 남편도 저와 같이 이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남편이 하루하루 다르게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곡으로 만든, 제 남편에게 헌정하는 곡이기도 해요.




한편으로 ‘Remembering Mr. Woods’에선 필 우즈를 향한 애정이 묻어나요. 필 우즈를 생각해 곡을 쓴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가 궁금하네요.


제가 뉴욕에 올 때 기대했던 것 중 하나가 제가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만나고 교류할 기회를 갖는 거였는데, 그중 한 사람이 필 우즈였어요. 너무 좋아했어요. 항상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공교롭게도 제가 뉴욕에 왔을 땐 그분이 계속 편찮으신 상태였어요. 그리고 제가 오고 나서 얼마 후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 너무 슬프고 섭섭하더라고요. 사실 만나서 연주하는 것도 좋지만 전 그분이 어떻게 사는지가 궁금했고,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었거든요.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누굴 좋아하면 이 사람이 누군지가 궁금하잖아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잖아요. 음악적 갈망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기회를 놓쳐서 좀 아주 아쉬웠어요. 마침 그때 곡 쓰면서 필 우즈 생각이 많이 났었어요. 느낌이 많이 반영 됐었죠. 이 곡을 짐 멕닐리 선생님이 보시더니 필 우즈 느낌이 많이 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어요.




계속해서 도모하는 도전과 발전



음악적으로 고갈되었거나 음악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때 스스럼없이 자문하고 대화할 멘토가 있으신가요.


처음 뉴욕에 왔을 때 스티브 윌슨 선생님이 그런 역할을 해주셨어요. 인간적이고 평이 좋으시죠. 저는 처음에 개인 레슨으로 그분을 알게 되었거든요. 그분과 대화하고 배우며 일하는 자세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항상 저를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제게 많이 힘이 됐죠. 또 한 분은 버지니아 대학 재즈학과장이시고 버지니아의 재즈 아이콘이라고 불리시는 분이자, 트럼펫을 연주하는 존 덜스(John D’earth) 선생님이에요. 제가 버지니아에 있는 동안 그분 밴드에 멤버로 연주할 기회를 주셨고 제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많이 애써주셨어요.


제가 그분 밴드에 맴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그분 밴드가 연주하는 곳에서 싯인(sit-in)으로 처음 연주됐어요. 제가 아무도 연고 없이 무작정 그곳에 가서 한번 연주할 수 있냐고 물어봐서 연주하게 되었죠. 그다음 날 맴버 제안를 받았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인터뷰어 주/ 존 덜스는 다른 주의 연주자들이 버지니아에 오면 그의 밴드가 연주하는 곳에 가서 연주하고 어울리는 그 지역 재즈 씬의 산 증인 같은 인물이다.) 그 밴드에 있으면서 많은 뮤지션을 만났고 연주도 많이 할 수 있어서 저에겐 정말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분이 제게 항상 했던 말이 ‘뭐든지 해, 네가 원하는 거라면’이었어요. 음악적으로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뭐든지 시도하고 하라고 용기를 주셨어요. 그 말이 저에게는 너무너무 힘이 되고 신선했어요. 실제로 그분 밴드에서 연주할 땐 저도 제 연주에 놀라곤 했어요 ‘어, 어떻게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지?’ 하는 거예요.


저도 알 수 없는 정체 모를 날것의 느낌들이 막 나오는 거예요. 그분이랑 연주하면 그게 나와요. 항상 그렇게 말하세요 ‘너 자체로 이미 멋있으니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네가 생각할 때 맞는 것을 해.’ 미국 생활하며 가장 큰 영향을 주신 분 중 한 분이세요.





음악가로서의 창의적 영감은 어디서 나오나요.


경험이에요. 실제로 저를 끌고 가는 힘의 원천이에요. 저는 스스로를 현장에 던지는 것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제가 음악적으로 고갈되었다고 생각되면 어디론가 가요. 제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요. 그때 많이 흡수돼요. 사실, 여섯 번째 곡 ‘Fireflies’도 산책하다가 엄청나게 많은 반딧불이를 본 데서 영감을 얻어 쓰게 된 곡이에요.




연습을 할 땐 주로 어떤 연습을 하나요.


지금 주부이자 아이의 엄마이다 보니 여건상 예전만큼 연습을 많이 하지는 못해요. 할 수 있을 땐 주로 곡 쓰는 것에 집중을 해요.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쓰고 싶은 곡의 이미지를 먼저 만들고 그것을 사운드로 남기려고 해요. 그리고 실제로 어떤 사운드가 나오는지 확인하고요.




조금 민감한 질문입니다. 아시아인으로서, 더구나 여성으로서 뉴욕에서 재즈 연주가가 된다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여성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고충이 대단할 거라고 짐작됩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그랬어요. 어디서든지 여성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데는 어려운 점이 많은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결국엔 파워 게임인데 파워가 부족한 거지요. 항상 약자의 입장이고, 거기서 오는 아쉬움과 어려움은 항상 있어요. 실제로 여성을 무시하는 상황이 꽤 있거든요. 예를 들어 잼 세션에 남자가 싯인하러 온 거랑 여자가 잼하러 온 거랑 다른 눈으로 볼 때도 더 있거든요.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다르게 보는 건 참 어처구니가 없어요. 같은 동료 뮤지션으로 보기보다는 여자로 보는 눈이 더 많은 것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에요.


한국에서도 그런 얘기를 자주 들었거든요. 저는 한국에서 한 번도 음악을 그만둘 거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제가 연주해온 커리어를 생각하면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제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너 결혼하면 연주 계속하겠냐?’, ‘계속 밤에 돌아다녀야 하는데?’, ‘애 낳으면 끝난다’ 같은 말을 듣는 게 이해도 안 되고 스트레스를 받아요. 남자들에게는 그런 얘기를 안 하는데 왜 여자는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실제로 미국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들었어요.

(인터뷰어 주/ 여성 뮤지션으로 겪는 고충에 대해 더 깊이 나누고 특히 한국에서 여성 뮤지션들이 겪는 많은 일들에 대해 들었으나 지면상 여기서 끊는다.)




본인이 생각하는 관악주자로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톤이라고 생각해요. 톤은 몇 초만 들어도 어떤 레벨의 연주자인지 판가름이 나거든요. 좋은 톤을 만들어서 누가 들어도 좋다고 느낄만한 레벨에 올라가는 게 몹시 어려워요. 톤을 만드는 건 결국 시간이거든요. 시간과 노력이 함께 만나야 만들어질 수 있어요. 톤은 내가 얼마만큼 시간을 들였느냐에 따라 계속 깊어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본인만의 재즈 철학이나 음악의 정의를 묻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요.


저에게 재즈는 저를 표현하는, 제 생각과 감정과 철학을 담는 도구라고 생각해요. 그게 저에게는 재미고요. 마치 일기를 썼는데 누가 와서 몰래 보는 것이 아니라 제가 쓴 글을 누가 와서 재미있게 읽어주는 오픈된 표현 수단 같아요.




지금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이런 앨범은 꼭 해보고 싶다는 작업이 있나요.


제가 예전에 프레드 허쉬가 듀오 시리즈를 할 때, 크리스 포터, 도니 맥캐슬린, 조엘 프람과 하는 공연에 다 갔어요. 저는 듀오 앨범을 꼭 한번 내보고 싶어요. 그래서 대가들은 듀오 연주를 어떻게 풀어내는지 항상 궁금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보려고 해요.




현재 한국에서 연주하는 연주자 중에 주목하는 연주인이 있나요.


지금 국내에도 좋은 연주자들이 많이 있는데, 주로 제 주위의 친구들을 지켜보게 되게 되는 것 같아요.




앞으로 구상하는 작업이 있으신가요.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것 중 하나가 인터내셔널 밴드를 하나 만드는 거예요. 미국에 있으면서 외국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이 참 많은데, 서로 돕고 벽이 되어주는 그런 연주 그룹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가장 빨리하고 싶은 건 여성들로 구성된 슈퍼 색스 밴드를 만들고 싶어요. 얼마 전에 찰스 밍거스, 디지 길레스피 빅밴드에서 연주하고 뉴욕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바리톤 색소포니스트 로렌 세비안을 만났거든요. 많은 대화를 하면서 서로 의기 투합되었고, 꼭 빨리 이 밴드를 결성해 연주하고 녹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본인이 뉴욕에서 공부하고 연주 활동하는 연주인으로서, 앞으로 본인과 같은 과정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세요.


기회가 된다면 꼭 도전하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이곳은 두드리는 만큼 열리는 땅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이란 나라에서는 두드리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는 아직도 발전 과정에 있는 곳인데 비해 여기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언지 확실히 알고 두드리는 만큼 기회가 와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최대한 알려서 좋은 기회들을 가질 수 있도록 본인이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아주 힘들기는 해요. 하지만 누구든지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용기를 가지고 도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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