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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화 × 재즈] 욕망(Blow-Up) × 허비 행콕  

작성자 JAZZ PEOPLE(ip:)

작성일 2020-04-09

조회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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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민주


FILM

욕망(Blow-Up)

|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 연도: 1966


JAZZ

영화 〈블로우업〉 사운드트랙

| 작곡: 허비 행콕

| 연주: 허비 행콕, 지미 스미스, 프레디 허버드, 조 뉴먼, 필 우즈, 조 헨더슨, 짐 홀, 론 카터, 잭 디조넷

| 연도: 1966


* 공식 음반 정보에는 오르간 연주자로 지미 스미스만 기재되어 있으나 비공식 자료들에 의하면 일부 오르간 연주 녹음에 폴 그리핀이 참여했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에 대한 사전 정보(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

‘공(空)’과 ‘무(無)’의 미학을 다루는

모더니즘 거장의 선언적 영화


영화는 자고로 ‘보여주는’ 예술이다. 1985년 영화를 발명한 뤼미에르 형제는 역에 도착하는 열차를 보여줬고, 1902년 최초의 SF 영화를 만든 조르주 멜리에스는 지구 너머의 달세계를 보여줬다. 하지만 전통적인 보여주기 방식에 대한 영화인들의 회의감이 짙어진 1950년대 이후부터, 영화는 종종 ‘보여주지 않는’ 예술의 모습으로 관객들 앞에 나타났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뱃놀이를 하러 갔다가 실종된 여인의 행방을 보여주지 않았고, 알프레드 히치콕은 여자를 살해하는 범인의 자세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기존의 영화들에서는 별문제 없이 볼 수 있었던 것들을 갑자기 볼 수 없게 된 관객들은 그 공백을 각자의 상상으로 채웠다. 보여주지 않는 방식은 관객들에게 정보를 덜 주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관객들의 주체성과 몰입도는 더 높아졌고 감독이 의도한 효과가 오히려 더 강화되는 사례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영화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혹은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미학적·윤리적 선택의 집합체’로서 다양한 작가주의 사조를 탄생시키며 발전해 갔다.



그중 앞에서 언급한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영화를 보여주지 않는 예술로 대한 감독 중 가장 선봉에 있던 인물이다. 그가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보여주지 않는 선택은 영화이론에서 오늘날까지 중요하게 다뤄지는 ‘죽은 시간(temps mort)’이란 개념까지 탄생시켰다. 알랑 드롱과 모니카 비티가 주연을 맡은 〈태양은 외로워〉(L’Eclisse/1962)의 엔딩 시퀀스가 바로 영화사 최초의 죽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매일 사랑을 속삭이던 두 연인이 늘 만나던 장소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 뒤 약속 당일이 되었지만 영화는 연인의 모습 대신 44개의 숏으로 구성된 텅 빈 공간 이미지만을 보여준다. 두 사람의 행방을 보여주지 않기로 한 영화의 선택 속에서 관객들은 눈앞에 보이는 거리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라짐’, ‘탈주’, ‘부재’를 보게 되는 경험을 한다. 이 기념비적인 시퀀스에 흐르는 정서는 아주 허무하고 차가운 상실감이다. 이러한 정서는 작품 속에서 장면과 대사를 통해 넌지시 암시되듯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 당시 유럽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던 보편적 정서이기도 했다. 안토니오니 스스로도 그러한 정서에 심취해 있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 이후 4년 뒤 발표한 〈욕망(Blow-Up)〉에는 전쟁 후 모더니즘계 예술가들이 공유해 온 ‘공(空/ emptiness)’ 혹은 ‘무(無/ nothingness)’에 대한 냉소적인 고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안토니오니의 의지가 선언적으로 담겨 있다.



영화의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자. 영화 속에서 ‘블루439’라고 불리는 주인공의 직업은 패션 사진가다. 화려한 패션모델 속에서 사진 작업과 방탕한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 날 들른 공원에서 우연히 중년 남자와 젊은 여자의 키스를 보고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힌 여자가 집착적으로 필름을 돌려달라는 것이 영 수상했던 그는 찍은 사진을 반복적으로 확대하며 현상과 인화를 거듭하는 중 촬영 당시 미처 보지 못한 시신의 존재를 희미하게 포착한다. 즉시 현장으로 달려간 그는 실제로 그 자리에 시신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문제가 시작된다. 어느 순간부터 증거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게 아닌가. 자신이 인화한 사진들도, 다시 찾은 공원 속 시체도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그에게는 ‘직접 보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위의 내용을 쭉 따라오면 누구라도 이 영화가 경험적 세계의 진실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둔 작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허탈감에 빠진 주인공은 다시 그 공원을 찾아 걷다가 한 야외 테니스장 앞에서 얼굴에 분칠을 한 여러 명의 광대 무리와 마주치게 된다. 코트 안으로 들어간 두 명의 광대는 아무 도구 없이 팬터마임으로 테니스 경기를 시작한다. 다른 광대들은 경기 내용에 완전히 몰입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관람한다. 주인공은 그들의 장난 같은 행위들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구경을 시작하는데, 갑자기 모든 광대가 주인공을 바라본다. 마치 주인공이 서 있는 풀밭 쪽으로 테니스공이 떨어졌다는 듯 말이다. 공을 가리키는 한 광대의 손짓에 주인공은 조금 망설이더니 서서히 몸을 움직인다. 그리고 빈 풀밭 위에서 테니스공을 줍고 그 공을 코트 안으로 힘껏 던진다. 이제 주인공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들을 구경하던 때와 달리, 마치 아까 전 경기를 관람하던 광대들의 표정처럼 제법 진지하게 공을 따라 시선을 왔다 갔다 옮긴다. 이제 그가 이 가상의 세계를 완전히 받아들인 것이다. 이 장면 직전부터 나타나는 카메라 운동도 몹시 흥미롭다. 카메라는 마치 정말 날아가는 공을 좇을 때와 같은 속도감과 방향성을 지닌 채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속을 유영한다. 만약 이때의 카메라를 감독의 시선이라고 한다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주인공보다 먼저 이 세계를 받아들인 것이다.


아마도 이 영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듯한 이창동 감독은 〈버닝〉(2018)에서 ‘해미(전종서)’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여기에 귤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여기에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면 돼.” 무언가가 존재하도록 하기 위해서 무언가가 없다는 사실을 잊는 것. 어쩌면 이것은 ‘영화 만들기’의 본질이 아닐까.




허비 행콕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현실과 초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작품의 세계관을 돕는 음악 연출


유사한 개념을 다루고 있는 〈태양은 외로워〉의 엔딩 시퀀스는 허무주의적 메시지로 읽히는 데 비해, 〈욕망〉의 엔딩 시퀀스는 새로운 창조에 대한 선언적 메시지로 읽히는 이유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흐르는 음악의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듯하다. 〈태양은 외로워〉의 장면에서는 미스테리컬한 분위기의 앰비언트 음악이 흐르지만, 〈욕망〉의 장면에서는 박력 있고 활기 넘치는 재즈 즉흥연주가 흐르니까.


사실 〈욕망〉 속에서는 처음부터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영화음악의 감독을 허비 행콕에게 전담시켜 온통 재즈 음악만을 삽입했기 때문이다. 당시 허비 행콕은 스물여섯 살에 불과했고 데뷔 음반 [Takin’ Off](1962)를 발표한 지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하지만 그는 과감히 제안을 승낙하고 화려한 라인업을 꾸린다. 그 결과 지미 스미스의 오르간, 프레디 허버드와 조 뉴먼의 트럼펫, 필 우즈의 알토 색소폰, 조 헨더슨의 테너 색소폰, 짐 홀의 기타, 론 카터의 베이스, 그리고 잭 디조넷의 드럼 등 당시 최고의 뮤지션들의 연주가 허비 행콕의 피아노와 앙상블을 이루게 됐다.



안토니오니는 왜 〈욕망〉이라는 영화의 음악으로 재즈를 선택한 걸까. 허비 행콕의 삶과 작품 세계를 탐구한 에릭 웬델의 저서 〈Experiencing Herbie Hancock: A Listener’s Companion〉(2018)에 실린 당시의 이야기 속에서 그 힌트를 살짝 얻을 수 있다. 안토니오니는 미국의 전위적인 색소포니스트 알버트 아일러의 열렬한 팬이었을 정도로 재즈를 좋아했다고 한다. 안토니오니는 허비 행콕에게 이 영화만을 위한 새로운 재즈 사운드트랙들을 요구했지만, 그 곡들은 대부분 배경음악으로 삽입되지 않고 디제시스적인 사운드(영화 속 사건이 벌어지는 가상의 현실 세계 안에서 실시간으로 등장하는 사운드)로 기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엔드 크레딧을 제외한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 주인공이 라디오를 켜거나 음악을 들으며 사진 작업을 하는 장면 속에서 흐르는 곡들이 바로 이 영화를 위해 작곡된 허비 행콕의 곡들이다. 즉 안토니오니는 영화의 흐름에 이질감을 전혀 주지 않으면서도 기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곡을 사용함으로써, 영화 〈욕망〉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현실과 초현실 사이의 신비로운 세계관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허비 행콕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의도를 처음부터 완벽히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 영화의 음악감독 제의를 받은 후 런던에서 안토니오니와 함께 작품을 감상했는데, 당시 어떤 음악을 만들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고 회고한다.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처음인 데다가 안토니오니가 영화에 담고자 한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불안과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허비 행콕을 위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단지 몇 개의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뿐이고 해석은 관객들에게 달려 있다고. 훗날 허비 행콕은 관객들에게 결정을 맡기는 안토니오니의 예술가적 비전에 감명을 받고 이런 교훈을 얻었다고 화답했다. 예술은 독재로 이루어져서도 안 되고, 수용자들이 특정한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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