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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화 × 재즈] 비포 선셋 × Just In Time  

작성자 JAZZ PEOPLE(ip:)

작성일 2020-04-27

조회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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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민주


FILM

비포 선셋

| 감독: 리차드 링클레이터

| 연도: 2004


JAZZ

‘Just In Time’

| 작곡: 줄 스타인

| 작사: 베티 컴든, 아돌프 그린

| 원곡: 뮤지컬 〈Bells Are Ringing〉(1956)

| 삽입음악: 니나 시몬 [The Tomato Collection](1994)



* 이 글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에 대한 사전 정보(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포 선셋〉

9년 전 헤어진 하룻밤 연인의

한나절 재회를 담은 영화


혼자 여행길에 오르는 사람들을 일정한 경향으로 범주화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 범주들 중에는 반드시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낭만을 기대하는 이들을 위한 유형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그 정도로 〈비포 선라이즈〉는 여행 중 처음 만난 이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기적을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을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 가운데 가장 낭만적인, 그래서 다소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그 특별한 상황이 영화 속에서 완벽히 납득 가능하게 재현된 것이다.



〈비포 선라이즈〉는 미국 남자 제시(에단 호크 분)와 프랑스 여자 셀린느(줄리 델피 분)가 비엔나로 향하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우연히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된 그들은 자연스럽게 말을 섞다가 서로에게 이끌려 별다른 계획도 없이 비엔나역에서 함께 하차한다. 낯선 도시 곳곳을 산책하면서 그들은 각자의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생각들은 물론 인간의 본질이나 전쟁에 대한 철학적 논의 등을 나누며 두 번 다시 경험하지 못할 운명적인 감정에 깊이 빠져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상황 속에서 한껏 부풀어 오른 이 감정이 자칫 이상과 거리가 먼 현실 속에 놓였을 때 사라져 버리면 어쩌나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애틋한 감정을 가능한 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해결책을 떠올린다. 그것은 바로 주소나 전화번호를 절대 교환하지 않은 채 이별하는 것. 단, 6개월 뒤 다시 이곳 비엔나역에서 만나는 것. 영화는 그들의 이 특별한 약속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는 관객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과연 그들이 비엔나역에서 다시 만났을까?’라는 강렬한 궁금증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에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과 주연 배우들의 남다른 팀워크까지 주목을 받으면서 이들이 한 번 더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의 열망은 자꾸 커졌다.


그래서였을까. 〈비포 선라이즈〉의 개봉 이후 9년이 지난 2004년, 드디어 그 사랑스러운 하룻밤 커플의 후속 이야기를 다룬 〈비포 선셋〉이 발표됐다. 모두가 오랫동안 기다린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최근 발표한 소설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제시가 파리의 작은 서점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있다. 그의 소설은 한 미국 청년이 프랑스 여인과 하루 동안 나눈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자전적인 소설이냐고 묻는 한 기자의 질문에 제시는 부인하지 않는다. 간담회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제시의 눈에 서점 구석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셀린느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녀는 자주 들르는 이곳 서점에 제시가 방문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그를 만나러 왔다. 간담회가 끝나자마자 제시가 행사 관계자에게 확인한 것은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남은 시간. “늦어도 7시 반에는 떠나야 해요.” 어쩌나. 시간이 별로 없다. 9년 만에 간신히 만난 그들은 결국 또 시한부 신세다.



해가 뜨기 전까지 나누었던 낭만적인 대화들은 9년 전 청춘 남녀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듯, 해가 지기 전까지 30대 중반의 남녀가 나누는 대화는 매우 현실적이다. 제시는 대학교 때 만나 혼전임신으로 결혼하게 된 초등학교 교사 아내와의 결혼생활에서 짙은 고독감을 느끼고 있고, 환경운동가가 된 셀린느는 현재 종군기자인 남자친구와 연애 중이지만 오랜 시간 반복돼 온 단기적이고 불안정한 연애에 무의식적인 불안감을 갖고 있다. 제시는 9년 전 약속된 날짜에 비엔나역에 나왔지만 셀린느는 그날 할머니의 장례식이 있어 나오지 못했다. 셀린느에게 불가피한 상황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나마 알게 됐지만 그래도 제시는 엇갈려 버린 자신들의 운명이 자꾸만 원망스럽다. “대체 비엔나에 왜 안 온 거야?” “이유 말했잖아.” “알아, 하지만 왔으면 좋았잖아. 그럼 모든 게 변했을 텐데...”




‘Just In Time’

때맞춰 찾아온 사랑,

그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연가


사랑은 타이밍이다. 사랑을 시작한 모든 이들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은 언제인지, 지금, 이 시기에 그를 만나는 것이 좋은 건지, 지금, 이 순간 그 사람을 놓친다면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래서 온전한 사랑에 빠져든 모든 연인은 서로의 눈을 보고 행복에 겨운 눈으로 말한다. “오, 어떻게 당신이 딱 이때 나를 찾아왔을까?”


‘Just In Time’은 바로 그렇게 때맞춰 찾아온 사랑의 아름다운을 예찬하는 연가다. “때맞춰 당신은 날 찾았어요, 때맞춰(Just in time you found me just in time)”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곡은 줄 스타인이 작곡하고 베티 컴든과 아돌프 그린이 작사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Bells Are Ringing〉(1956)의 넘버 중 하나로, 이후 토니 베넷, 프랭크 시나트라, 니나 시몬 등 당대 최고 가수들에게 불리며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때맞춰 당신은 날 찾았어요 때맞춰

당신이 오기 전 내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었죠

길을 잃었었죠 지는 주사위가 던져졌죠

건너야 할 다리는 모두 건넜고 어디도 갈 데가 없었죠

이젠 당신이 있어요 이제 난 어디로 가야 할지 알죠

더 이상 의심과 두려움 없이 나의 길을 찾은 거죠

사랑이 제시간에 찾아왔기 때문에

당신이 날 때 맞춰 찾아줬기 때문에

나의 외로운 밤들을 바꾸었기 때문에

행운이 찾아온 그 날 때맞춰




비포 선셋 × Just In Time

엇갈려 버린 연인의

애틋한 재회 속 마지막 판타지


다시 〈비포 선셋〉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제시의 비행기가 뜨기까지 이제 1시간밖에 남지 남았다. 제시는 행사 주최 측에서 지원해 준 운전기사에게 부탁해 셀린느의 아파트 앞까지 그녀를 바래다주기로 했지만, 막상 집 앞에 와 보니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핑계를 만들어 집에 들어간 제시는 셀린느가 기타 연주와 함께 불러 준 자작곡 속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뭘 더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집안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오디오와 음반들을 발견했다. 그가 고른 음반은 니나 시몬의 [The Tomato Collection](1994). 니나 시몬은 이 영화가 촬영되던 시기 직전인 2003년에 세상을 떠났다. 영화 속 인물들도 이를 애도한다. “니나 시몬 콘서트 가 봤어?” “아니. 죽어서 참 안됐어.” “맞아, 너무 슬퍼.”



음반에서 재생되고 있는 음악이 바로 ‘Just In Time’이다. 때맞춰 찾아온 사랑의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니나 시몬의 짙은 음색이 9년 전 이별 후 타이밍을 놓친 두 사람의 귓가를 간지럽힌다. 노래의 메시지와 정반대에 놓인 자신들의 상황을 정말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셀린느는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며 말한다. “난 콘서트 두 번 가 봤어. 너무 멋지더라. 이거 내가 좋아하는 곡이야.”


셀린느는 니나 시몬이 무대에서 추는 춤을 따라 추면서 그녀가 콘서트 관객들에게 건네는 말투를 흉내 내며 제시에게 말한다. “자기, 이러다가 비행기 놓치겠어.” 제시는 웃으면서 말한다. “알아.” 영화는 그 순간 막을 내린다. 〈비포 선라이즈〉가 관객들에게 ‘6개월 뒤 그들은 비엔나에서 재회했을까?’라는 문제를 남겼다면, 〈비포 선셋〉은 관객들에게 ‘제시가 비행기를 놓쳤을까?’라는 새로운 문제를 남긴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이 마지막 장면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첫 번째 장면, 서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자간담회 내용을 한 번 더 떠올릴 필요가 있다. 한 기자가 행사의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다음 작품은 뭐죠?” 작가 제시는 이렇게 답한다. “팝송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싶어요. 노래 한 곡에 모든 것을 담는...” 글쎄, 이 정도로는 지금 그가 어떤 것을 쓰고 싶은지 잘 알기 어렵다. 제시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이어 간다.


“한 남자가 있어요. 원래 그의 꿈은 사랑과 모험을 찾아 남미를 유랑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의 현실은 딴판이죠. 좋은 직장, 멋진 부인. 모든 걸 가졌지만 그에겐 모든 게 무의미할 뿐입니다. 행복은 소유가 아닌 행동 속에 있죠. 어느 날 그가 식사하는데 그의 어린 딸이 식탁에 올라갑니다. 여름 원피스를 입을 딸은 팝송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죠. 그 순간 그는 16세 소년이 됩니다. 여자친구가 그를 집까지 태워준 날 둘은 서로에게 순결을 주죠. 차에는 같은 팝송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자친구는 차 지붕 위에 올라가 춤을 춥니다. 딸과 똑같은 그녀의 환한 표정이 너무나 사랑스럽죠. 이때 그는 두 곳에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의 모든 삶이 오버랩되면서 시간의 영속성은 사라지죠. 삶의 모든 순간엔 다른 순간들이 겹쳐 있다는 겁니다.”


제시는 니나 시몬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셀린느를 보면서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까. 어쩌면 그는 지금 셀린느의 집안 소파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9년 전 비엔나 골목에서 바흐를 연주하는 하프시코드 소리에 맞춰 춤추던 젊은 셀린느 앞에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즉, 지금 그에게 의미 있는 것은 시간의 선형적인 영속성이 아니라 동시적인 순간성이다. 비행기 시간 따위가 그에게 중요할까? 직접 정확한 정답을 확인하고 싶다면, 2004년으로부터 또 한 번 9년이 흐른 뒤 개봉한 〈비포 미드나잇〉(2013)을 보면 된다. 그 속에는 〈비포 선셋〉이 남긴 문제에 대한 정답과 함께 계속 이어지고 있는 제시와 셀린느의 인연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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