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뒤로가기
제목

내려놓음의 음악, 공백의 미를 창조하는 탐험가 - 야콥 브로  

작성자 JAZZ PEOPLE(ip:)

작성일 2020-05-12

조회 289

평점 0점  

추천 추천하기

내용


글, 인터뷰 양수연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의 세계적인 재즈 기타리스트 야콥 브로(Jakob Bro, 1978~ ). 그는 첫 리더작 [Sidetracked](Loveland, 2005)를 시작으로 2018년 [Returnings](ECM) 앨범까지 14장의 리더작을 발표했다. 맨해튼의 빌리지 뱅가드 재즈클럽에서 1월의 마지막 주에 5일간 특별 공연을 한 야콥 브로를 만났다.


“그의 기타 스타일을 설명하는 것은 공기의 진수를 말하려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했던 〈뉴요커〉 매거진에 공감한다. 그는 빈티지 감각으로 공백의 영역을 창출하는 신중한 연주자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한다. ‘아름다움’이야말로 음악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모두가 추구하기를 원하지만, 어찌 보면 모호하기 짝이 없는 개념이다.


더군다나 야콥 브로의 음악에서 그 아름다움이란 일반적인 틀을 가지고서는 다가서기조차 어렵다. 그의 아름다움은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 즉 작곡의 시작점에서부터 파악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자기 작품을 어떤 결론이 아니라 여러 연주자의 ‘태도’를 흡입하여 발전시키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작곡한 작품과 즉흥연주 사이에 일정 부분 공백의 영역을 유지하려 한다. 그 공백 속에서 존재의 순간을 찾아내려는 어떤 의지를 보여준다. 인터뷰는 솔직하고 진지했다. 그를 탐험하고 항해하는 것은 나로서는 큰 기쁨이었다.




작곡과 연주 사이에서 공백에서 미를 찾다


빌리지 뱅가드에서의 콘서트는 어땠나요.


매우 좋았어요. 저는 거의 매일 밤 새로운 도시, 새로운 장소에서 연주해요. 그래서 새로운 장소에 맞게 사운드를 세트업해야 합니다. 그런데 같은 장소에서 거의 일주일간 연주하니 사운드가 발전하는 느낌이어서 무척 좋았어요.




뉴욕에는 얼마나 자주 공연하러 오나요.


1년에 한 번은 오려고 노력해요. 하지만 제 밴드는 유럽과 다른 곳에서 더 많이 연주합니다. 일본에서도 매년 연주했고요. 그러나 2살 아이가 있고 이제 곧 아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어서 장기 공연은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그런데 빌리지 뱅가드에서 2년 연속 일주일 공연을 할 수 있어서 꿈을 이룬 것 같아요.




이번 공연에는 어떤 음악적인 목적이 있었나요.


특별한 목적을 정하지는 않아요. 늘 열린 개념과 정체되어 있지 않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려고 하죠. 목표가 있다면 매일 밤 다르게 연주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같은 12곡을 3주 연속으로 다르게 연주할 수 있어요. 같은 방식으로 연주하지 않기 때문에 흥미로운 거예요. 그리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마크 터너와 함께하기로 한 것은 정말이지 훌륭한 선택이었죠. 그의 사운드, 조화, 긴장, 그리고 그가 창조해내는 대비를 좋아해요. 그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제가 시작하면 그는 바로 알아채요. 듣고 알아내고 알아내는 훌륭한 그의 재능... 그는 더없이 멋진 연주자입니다.




당신은 항상 베이시스트 토마스 모건과 연주하나요.


맞아요. 토마스를 무척 좋아해요. 우리는 적어도 10년 동안 함께 연주했죠. 그는 제 모든 음악을 잘 알고 많은 도움을 줘요. 그는 정말 제게 특별한 연주자예요.





욘 크리스텐센과 조이 배런은 어떤가요. 스타일이 매우 다른 드러머가 당신의 음악과 창조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당연히 영향을 미쳤어요. 그 둘은 달라요. 제 트리오에 마크 터너를 더하면 그것은 제 트리오 + 마크 터너가 아닌, 하나의 유닛이 됩니다. 토머스 모건, 욘 크리스텐센과 함께하는 트리오는 조이 배런과 토머스 모건과의 트리오와는 달라요. 욘이 조이보다 더 추상적인 방식으로 연주한다고 할까요. 아니, 그건 맞는 표현이 아닐 거예요. 그들은 다르게 연주하고 제가 그들 각자에게 적응해야 해요. 그러나 욘은 건강상의 이유로 더는 순회공연을 하지 않고 있어요. (공연 후 2월 18일에 욘 크리스텐센이 사망했다.)


그래서 지난 5~6년간은 빌리지 뱅가드 투어에 조이 배런이 함께했습니다. 조이는 훌륭한 청취자이기도 해요. 그는 드럼으로 소통해요. 그는 하나의 악기처럼 느껴져요. 그는 항상 순간을 잡아냅니다. 그래서 저는 조이를 사랑하죠.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제 음악에선 그 순간의 기회를 잡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조이와 토마스 모두 그렇게 하고 있어요.




당신은 이미 14장의 앨범을 만들었으며 각각의 음악이 다양하고 특별해요. 가장 오래된 앨범부터 최신 앨범까지 어떻게 아이디어를 개발했나요. 그 아이디어를 끌어내는 데 영향을 준 연주자가 있었나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계속 개발하려고 해요. 어렸을 때, 즉흥적으로 작곡하고 연주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어요. 음악의 여러 측면에서 제 목소리를 찾아야 했어요. 연습하고 작곡하면서 그것을 개인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했죠. 폴 모션은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죠. 저는 특히 그의 작곡하는 방식을 좋아했어요. 저는 그가 결성한 모든 밴드의 열렬한 팬이었고, 그래서 그가 자기 밴드에서 연주하라고 요청한 일은 제 음악 경력에서 중대한 사건이었어요.


폴은 1980~90년대에 자신의 트리오와 퀸텟으로 연주했던 곡들을 밴드로 가져와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롭게 작곡하고 탐구하곤 했어요. 찰리 헤이든과 곡을 쓰고 20년 뒤에 다시 사용한 걸 보세요(앨범 [Garden Of Eden]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작업에 참여한 것은 환상적인 경험이었어요.


저는 폴이 다른 연주자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것을 보았어요. 조 로바노, 빌 프리셀과의 트리오는 정말 특별했죠. 폴이 다른 색소포니스트를 선택했다면 완전히 다른 밴드가 됐을 거예요. 그는 다른 연주자들의 훌륭한 조합, 거기에 대한 의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자기 목소리를 찾는 데 능숙했어요. 이것은 저에게 큰 영감이 됐어요. 제가 하려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음악에 기여하는 새로운 연주자를 발견하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폴의 또 다른 장점은 드럼 연주방식을 그의 작곡의 세계와 통합할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그는 완벽했어요. 존 콜트레인, 마일스 데이비스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렇게나 위대한 마스터와 가까이 있는 것은 저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어요.




폴이 연주와 작곡의 세계를 통합했다고 했는데, 당신은 작곡할 때에 어떤 것을 염두에 두나요. 이를테면 폴과 같은 방식으로 작곡한 작품이 연주에서 내재하고 텍스트가 상호교감하는 방식을 즐기나요. 작곡에서 당신의 목소리는 어떻게 묻어나는 것인가요.


작곡은 무대의 연주를 위한 시작점이에요. 저는 이전의 작품을 다른 환경으로 가져가고 있고 그 작품들과 함께 성장하고 있어요. 20년, 25년 전에 작곡했던 곡들이 계속 자라나는 것이 흥미로워요. 이번 빌리지 뱅가드 공연에서도 25년 전에 쓴 곡을 연주했어요. 그 곡은 계속해서 저를 따라다니죠. 저는 여전히 그것을 사용할 수 있고 그것으로 어떻게든 활용해서 음악을 창조해낼 수 있어요.


저는 방대한 작문 카탈로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많이 작곡할 필요는 없어요. 내가 이전에 이미 쓴 것을 계속 탐구하면서 공연하는 것이죠. 공연장에서는 옛 작품들이 그때의 세팅에 맞게 성장하고 창조하는 순간을 보여줄 수 있어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게 되는 것은 스튜디오에 들어갈 때뿐이에요.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7~8개의 곡은 앞으로의 공연에서 계속 새롭고 발전하고 역동적인 모습으로 변형되기도 할 거고요. 이렇게 저의 삶을 반영하는 곡들이 ‘신선하게 보존’되어 가는 것을 즐겨요.




당신의 작곡은 ‘최초의 작곡’을 의미하는 것이군요. 마치 ‘최초의 인간’이 은유하는 것처럼요. 신선하게 보존하는 능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당신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음,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곡을 쓴 시작점과 음악을 연주하는 개방성 사이에 있는 어떠한 혼합물이 아닐까요. 작곡을 끝내고 그것들은 연주하면서 다른 세계로 떠나는 것, 저는 이것에 골몰해왔어요. 이 정도면 충분하고 더이상 음악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죠. 맞아요, 저는 해석의 문제를 말하고 있는 거예요. 무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현장성, 그곳에서 꿈틀거리는 작곡 원형의 변화가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마크 터너가 제 곡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얼마나 그것이 대단한지. 그렇게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연주자가 있는 한, 제가 작곡한 곡은 제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느껴요. 그들은 저의 곡, 저를 ‘참조’할 뿐이지 우리의 음악은 마치 저절로 발생한 것처럼 꿈틀거립니다. 그것이 나의 판로이고 배출구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제 음악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무대에 설 때 행복해요.




상대방의 연주가 들릴 때 완성되는 스윙


어린 시절 당신의 음악 경험을 말해주세요. 당신의 부모님과 형제는 어땠나요.


저는 세 남매 중 둘째예요. 부모님 모두 교사였고 누나도 교사예요. 11살 아래의 남동생은 변호사예요. 루이 암스트롱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팬이었죠. 하지만 그는 비틀스, 롤링 스톤스, 지미 헨드릭스, 그리고 제가 지금 함께 연주하는 덴마크의 트럼페터 팔레 미켈뵈르그의 열렬한 팬이었어요. 아버지는 학교에서 밴드부를 지도했고 여러 악기를 가르치셨어요.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클라리넷, 트롬본, 색소폰, 트럼펫, 피아노, 기타, 베이스, 온갖 종류의 악기들이 있었죠. 밴드에서 클라리네티스트가 필요하면 아버지는 학생을 뽑아서 클라리넷을 가르쳤고 트럼펫이 필요하면 트럼펫을 가르치셨어요. 저는 아버지가 가르치는 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했어요. 우리는 듀크 엘링턴과 카운트 베이시를 연주했죠. 이것이 저의 첫 음악 경험이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계세요.





그럼 진지하게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한 건 언제였나요.


학교 밴드에서 트럼펫을 연주한 것이 13세 무렵이었죠. 그 후 지미 헨드릭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 기타를 배우게 되었어요. 한동안 트럼펫과 기타를 병행하다가 기타를 선택했어요. 음악에 집중하고 싶어서 15살에 고등학교를 그만두었어요. 대신 아버지가 교사로 있는 학교의 지하실에 틀어박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습에 몰두했어요. 그리고 17살에는 음악원에 입학했어요. 내 친구들은 여전히 고등학생이었지만, 음악원엔 10살, 15살이나 많은 음악학도들이 있었죠. 기타만 치고 싶었지만, 음악원에선 다른 음악 공부에도 집중해야 했어요. 그래서 한 학기 동안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와서 버클리음대에 갔습니다. 이곳에서 오래 정착하지는 못했어요. 1998년에 보스턴에 6개월 공부하러 와 있었고 다시 덴마크로 돌아갔다가 1999년부터 2년간 뉴욕에서 활동했어요.




당신의 음악을 들을 때 약간 북유럽의 신화적 요소와 동양화가 보여주는 여백과 공백이 신비스럽게 결합한 이미지로 다가와요. 당신은 어떻게 느끼시나요.


사람마다 다르게 제 음악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작곡가로서 저는 소리, 회화, 영화 등 다양한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아요. 어느 날 내 삶이 훌륭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다음 날 밤에는 내 삶이 끔찍하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녹음된 음악은 완전히 반대로 들릴 수도 있죠. 우리가 무대에 오를 때 밴드의 역할은 단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탐험하고 보여주고 듣는 것에 대해 솔직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관객은 순간순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반응해요.


저는 음악에 관해 이야기할 때 너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무대에서 곡을 소개할 때 곡 제목이 여름에 수영하러 갈 수 있는 장소라면, 저는 청중에게 그곳이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인지 소개하지 않아요. 이번 빌리지 뱅가드 공연에서도 그랬고요. 청중이 그 곡을 들으면서 덴마크에 있는 구체적인 작은 해변을 생각하게 유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곡의 이미지를 각자가 탐험하고 느끼도록 내버려 둬요. 청중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그 느낌을 간직하기를 원할 뿐, 제가 특정 방향으로 이 곡의 느낌은 이런 것이라고 유도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일본에 있는 팬들은 그들의 문화적인 요소가 제 곡에서 느껴진다고도 하더라고요. 저는 작곡할 때 곡의 본질로, 작품의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려고 노력할 뿐이에요.




당신은 진지한 음악적 감각을 가지고 있어요. 때로는 포크적이고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천진난만하죠. 당신에게 블루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당신의 곡 ‘Copenhagen Slow Blues’를 예로 들 수도 있겠고요.


블루스라... 코펜하겐 출신의 백인 소년으로서 저는 까다롭지만 항상 지미 헨드릭스와 존 리 허버트를 사랑했고, 블루스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제가 생각해왔던 것 중 하나는 이거예요. 우리가 악기로 할 수 있는 것의 한계가 있는가? (저를 포함해서) 많은 연주자는 악기에 능숙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느 정도면 충분한 거지? 오늘 나는 더 연습해야 하는 건가? 이렇게 연주하면 괜찮은 걸까? 내가 악기에 좀 더 능숙하다면 이렇게 연주해도 괜찮을까? 등등. 많은 사람이 재즈를 연주할 때 고군분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블루스가 저를 많이 도와줬다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이를테면 존 리 허버트가 한 음을 연주했을 때 제게 그것은 어떤 거장이 내는 천 개의 음 이상의 효과로 작용했어요. 한마디로 블루스는 사람들을 내려놓게 돕는 음악이에요. 음악은 단순히 악기를 잘 연주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블루스를 통해 배웠어요.




그렇다면 스윙은요. 저는 스윙이 재즈의 심장 박동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유러피안 재즈도 그렇고 당신의 음악도 노골적으로 그걸 보여주지 않죠. 저는 그것이 또한 스윙의 매력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물론, 당신의 음악은 숨을 많이 쉬죠. 아주 신선한 산소를 품으면서. (웃음)


그렇죠. (웃음) 좋은 질문이네요. 폴 모션 밴드 얘기를 또 해야겠군요. 저는 시끄럽지 않게 연주하는 기타리스트였고 그 덕분에 폴의 심벌 옆에 서서 연주할 수 있었어요. 폴은 시끄러운 기타리스트를 옆에 세우고 싶어 하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폴의 심벌 옆에서 스윙을 타고 있었어요. 경이롭게도 제가 그 심벌에 의해서 씻겨지는 기분 같은 걸 느꼈습니다. 스윙은 꼭 규칙적인 박자일 필요는 없어요. 그건 제 트리오에서도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에요. 우리가 다른 템포를 연주해도 음악을 숨 쉬게 만드는 것, 서로를 위한 여백을 제공해주는 것. 그것이 스윙에 대한 제 관점이에요.


웨인 쇼터와 함께 연주하던 드러머 조르디 로시는 그들의 밴드가 정확한 트랙에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웨인은 일부러 다른 곳으로 가버리곤 했다고 제게 말했어요. 저는 그것이 웨인이 끊임없이 찾고 있는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웨인이 조디에게 함께 연주하고 있는 한 당신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제 경우도 조이가 함께 연주할 때 우리가 박자를 벗어나면 그것은 소음으로 들릴 거예요. 제가 만약 그에게 집중하지 않고 연주한다면 그것은 스윙으로 가지 않게 될 것이고, 마치 소음처럼 들리겠죠. 만약에 제가 저 자신이 아니라 조이에게 더욱 집중한다면 그것은 실제 비트가 우리가 아는 스윙이 아니라도 그것은 스윙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2박, 4박으로 찍는 연주자와 연주한다고 생각해보죠. 제가 그 사람에 집중하지 않고 그냥 메트로놈처럼 여긴다면 그 박자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그것은 스윙이라고 할 수 없어요. 상대방의 사운드를 듣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것은 스윙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스윙은 정말 흥미로운 것이에요. 욘 크리스텐센은 추상적인 연주를 하더라도, 토마스 모건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욘의 스윙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죠.





현재 코펜하겐 재즈 씬은 어떤가요.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코펜하겐에는 덱스터 고든, 벤 웹스터, 버드 파월, 오스카 페티포드가 연주했던, 빌리지 뱅가드처럼 오래된 멋진 재즈클럽들이 있어요. 그리고 아방가르드한 실험 음악이 발달해 있어요. 그 이유에는 리드믹 뮤직 콘서바토리 같은 좋은 예술학교가 있기 때문이에요. 이곳은 화음이나 스케일을 가르치는 일반적인 음악원과는 달라요. 그래서 이곳에 입학하기 위해 세계 전역에서 학생들이 오고 있어요. 그들이 연주할 장소도 많고요. 덴마크재즈연맹은 여러 가지 스타일을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데 능숙하고, 연주 공간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예술 재단도 있어요. 여러모로 재즈 음악을 위해 더없이 좋은 도시예요. 그리고 많이 알려진 코펜하겐재즈페스티벌이 있고 도시 전역 곳곳에서 재즈가 울려 퍼지는 멋진 곳입니다.




당신에게도 실험적인 부분이 상당히 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실험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즉흥연주를 하면서 이런저런 실험을 많이 했고 프리 뮤직도 많이 들었어요. 다양한 표현을 하려고 했어요. 처음에는 소음이라고 느끼더라도 바로 뒤에 정말 아름다운 경치가 기다리고 있어요. 감상자도 그걸 느끼길 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열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예전에 코펜하겐의 한 음악원에서 심사위원으로 일할 때였어요. 기타로 정말 멋지고 긴 곡을 작곡한 소녀가 있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연주할 수 있는지 몹시 궁금했는데 나중에 컴퓨터가 한 일이란 걸 깨달았죠. 그녀는 기타 사운드를 컴퓨터에 넣어 보통의 기타가 할 수 없는 것을 만들었던 거예요. 그것은 실험이었고 정말 멋진 일이었어요. 동시에 제가 너무 구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기타를 들고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니까 말이에요. 그러나 앞으로 50년 뒤에 이런 저의 연주방식은 희귀한 광경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만큼 더 중요해지리라 생각해요. 지금 빌리지 뱅가드에는 123개의 객석이 있어요 이것은 미래에 점점 중요해질 거예요. 지금의 구식이 나중에는 실험이라 불릴 수 있게 되는 거죠.




당신은 빌 프리셀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당신의 독창적인 사운드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요.


저는 빌을 사랑해요. 그는 환상적이고 좋은 친구죠. 팻 메시니, 빌 프리셀, 존 스코필드, 존 맥러플린, 존 애버크롬비, 팻 마티노, 짐 홀 등 정말 많은 훌륭한 음악가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20년 전, 스탠더드곡을 연습하다가 어느 순간 탐험하고 싶었어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제 연주에서 많은 다른 음악가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매일 밤 토마스 모건의 베이스에서 찰리 헤이든을 들을 수 있었고, 마크 터너 색소폰에서는 리 코니츠를 들을 수 있었어요. 모두가 저에게는 아름다움의 일부분이에요. 청중은 탐색하고 사랑하는 소리를 찾으려 하고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저의 독창성은 그렇게 배워서 익힌 것들이 나의 일부로 완벽히 되었을 때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당신의 음악 이론은 무엇인가요.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음악에서 벗어나 어떤 식으로든 그것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실현하려고 노력하지만, 저는 이 음악을 소유하지 않아요. 이건 제 것이 아니라고 늘 생각합니다. 음악은 이미 그곳에 있고 저는 그것을 실현하려고 하는 것이죠. 무엇으로? 아름다움으로요. 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작은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에요. 그럴 때마다 보람을 느껴요.


제 앨범 중에 [Streams]라는 앨범이 있어요. 언제나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는 의미예요. 음악은 당신이 그것을 차단하지 않는 한 자신의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다음 앨범에 대한 계획은 무엇인가요.


8월에 노르웨이 트럼페터 아르베 헨드릭슨과 베이시스트 래리 그레나디어, 드러머 호르헤 로시와 함께 다음 앨범을 녹음할 계획입니다.



비밀번호
수정

비밀번호 입력후 수정 혹은 삭제해주세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 수정

이름

비밀번호

내용

/ byte

수정 취소

댓글 입력

이름

비밀번호

내용

/ byte

평점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

회원에게만 댓글 작성 권한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