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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마리아 슈나이더 오케스트라 [Data Lords]

작성자 JAZZ PEOPLE(ip:)

작성일 2020-11-10

조회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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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김현준


바로 그 길 끝에서 태양이 나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얼마 전 나는 20년 넘게 우편으로 받아보던 ‘종이 잡지’ 〈다운비트(Downbeat)〉를 포기하고 ‘온라인 파일’로 구독 패턴을 바꿨다. 음악을 대하는 나의 양태도 아날로그보다 디지털에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위의 첫 문장을 쓰자마자 종이 잡지를 ‘포기’했다는 표현에 스스로 멈칫한다. 많은 게 변했다. 세계관은 달라지지 않았어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란 게 있다.


5년 만에 발표된 마리아 슈나이더 오케스트라의 새 앨범. 내러티브를 먼저 들여다보자. 곧 환갑이 되지만 늘 풋풋한 미소를 잃지 않는 이 자연주의자는 앨범 안쪽에 ‘두 세상 이야기’란 소제목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겼다. ‘한 세상은 마음을 어지럽히고 다른 세상은 마음을 맑게 한다. 한 세상은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아우성치지만 다른 세상은 그저 기다릴 뿐. 한 세상은 우리의 생각을 조작하고 다른 세상은 생각의 자유를 선사한다.’ 참고로 마리아 슈나이더의 취미는 (재즈인들 사이에서 꽤 유행한) ‘망원경으로 새 관찰하기’다.


그녀가 설정한 두 세상. 전자는 ‘디지털 세상’이고 후자는 ‘우리의 자연적인 세상’이다. 앨범 타이틀은 (의역하면) ‘데이터를 거머쥔 우두머리들.’ 그녀는 두 장의 CD로 구성된 이 앨범이 ‘구글과 유튜브 같은 디지털 기업들을 비웃기 위한 것’이라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그래도 작금의 세상을 어찌 생각하는지 되물을 필요는 있어 보인다. 예컨대 라이브의 기회가 소중한 연주자들에게 유튜브를 통한 비대면 공연보다 나은 대안이 있느냐는 투의 얘기들. 사실 마리아 슈나이더의 생각은 거시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다. 반면 우리의 상황은 부득이 미시적이고 현실적일 수밖에 없다. 주제의식에 관한 얘긴 여기까지. 이제 음악을 듣자.


[Data Lords]는 소리로 만들어진 새로운 종(種), 창작의 주체인 마리아 슈나이더도 쉽게 제어할 수 없는 독립된 생명체와 같다. 5곡과 6곡이 담긴 두 장의 CD를 들으며 쉬어도 되겠다 싶은 시점은 CD를 바꿀 때뿐이다. 근년 들어 빅밴드 앨범 중 이처럼 풍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경우는 없었다. 앞서 짚어본 마리아 슈나이더의 주제의식이 무엇이든 별 상관없다고 느껴질 정도다. 듣자마자 뇌리에 각인되는 인상적인 멜로디에 허를 찌르는 구성과 평범하지 않은 화성이 더해지며 최고 수준의 ‘음악 듣는 재미’를 맛보게 한다. 다른 건 모두 제쳐둔 채 그저 소리의 조합만으로 이처럼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체험하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어쩌면 탁월하고 섬세한 사운드 덕인지도 모른다. (라이브의 악기 배치를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의도된 것으로 보이는 패닝(panning)이 자주 드러나며, 곡을 풀어내는 솔로이스트들도 마리아 슈나이더와 미리 논의한 것으로 보일 만큼 특징적인 음색과 질감을 운용한다. 사실 이건, 지난 20여 년간 마리아 슈나이더 오케스트라가 성취해낸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Data Lords]는 그녀를 향해 품고 있던 우리의 기대와 믿음을 재확인시킨다.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우아하고 화려한 색채 이미지, 그리고 그로 인해 펼쳐지는 공감각의 향연.


돌이켜 보면, 마리아 슈나이더 오케스트라의 앨범 중 하나라도 세간의 시선을 모으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녀는 과작의 음악인이지만 언제나 이슈 메이커로서의 역할까지 충실히 수행했다. 당대 최고의 연주자라 일컬어지는 이들이 대거 힘을 보태온 점도 리더로서 그녀가 지닌 카리스마를 엿보게 한다. 헤게모니를 쥔 제도권의 지지까지 맞물려 마리아 슈나이더는 이미 그래미의 주역이 됐다. 장담컨대 내년이면 [Data Lords]를 통해 여러 개의 수상 경력을 더할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사회적 논리와 상업적 시각을 뛰어넘는 음악 자체의 높은 성과다. 마리아 슈나이더의 미덕은 셋. 탐미주의, 독창성, 그리고 진정성이다. 우리는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기분 좋게 설득당한다. 비록 허무한 춘몽에 불과할지라도 잠시나마 재즈의 밝은 미래를 꿈꿀 수도 있다.


소프라노 돈 업쇼(Dawn Upshaw)와의 작업으로 발표됐던 곡이 새로운 연주 버전으로 [Data Lords]의 대미를 장식한다. 마리아 슈나이더가 경애하는, 우리나라의 황동규 시인과 비슷한 위상을 지닌 테드 쿠서(Ted Kooser)의 〈3월 20일 춘분〉이 모티프가 된 곡이다. 시 전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지면 관계상 행의 구분은 생략한다. ‘누군가에겐 이 얼마나 소중한 사실인가. 나는 살아 있고, 걷고 있고, 이 시들을 쓰고 있다는 것. 오늘 아침, 바로 그 길 끝에서 태양이 나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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