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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MeToo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작성자 JAZZ PEOPLE(ip:)

작성일 2018-03-23

조회 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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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MeToo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미투 운동(#MeToo Movement)이 한창이다. 문화계 전반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미투 운동은 재즈계를 빗겨나가지 않았다. 내면에 휘몰아치는 안타까움과 분노는 너무나 복합적이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낮은 성 인식 수준만큼이나 안타까웠던 건 다수에게 이러한 문제가 ‘남의 일’인 양 방관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일종의 오락처럼 ‘관람’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투 운동은 단순히 표면에 드러난, 가해자-피해자의 이야기뿐 아니라,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마주하고 있는 일상의 일부분을 전면에 끄집어내고 있다. 우린 이 사태에서 무관한 관찰자가 아니다. 성폭력이 만연하고 성 인식 수준이 낮은 이 사회에선 가해자가 되었든, 피해자가 되었든, 주변인이 되었든, 방관자가 되었든, 모두가 인사이더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을 해온 월간 <재즈피플> 편집부는 성폭력 문제가 표면에 드러난 지금이 우리가 힘을 보탤 적기라고 보았다. 박준우 평론가의 조언과 서정민갑 평론가의 도움으로 성폭력상담소의 김혜정 부소장과의 귀중한 대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재즈 보컬리스트 남예지, 그리고 그가 추천한 대중음악가 배샛별에게 좌담 진행을 부탁했다. 평소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온 만큼 좋은 이야기를 끌어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진행된 좌담 내용도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본 기획 기사에서 다루는 내용은 단순히 재즈계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문화/ 예술계, 더 넓게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야기다. 재즈 음악가로서, 대중음악가로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겪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김혜정 부소장으로부터 따뜻하고 현실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좌담은 위에 언급한 모든 분들의 도움으로 준비하고 진행할 수 있었다. 이 모두에게, 그리고 어쩌면 이번 좌담으로 인해 비판을 감수해야 할지도 모를 두 음악가에게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_ 편집부


사진_안재경

정리_류희성




김혜정(이하 김): 월간 <재즈피플>과 함께 오신 거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해서 두 분으로 정해진 건가요?


남예지(이하 남): ‘재즈 포럼’이라는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고 계신 <재즈피플>의 김광현 편집장님께서 전화를 주셔서 이런 자리를 제안하셨어요. 그러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실 분이 있냐고 하셨고요. 제가 “굉장한 전문가가 한 명 있다”고 했어요. (전원 웃음)  


배샛별(이하 배): (웃음) 저희가 같은 학교에 수업을 나가요. 개강일, 카페에서 다른 분들과 시국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다가 언니가 이 좌담에 관해 이야기를 했어요.


남: 저는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고, 술자리를 가는 일도 드물어서 그런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잘은 몰랐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사태를 경험하면서 이제야 심각성을 알아가고 있어요. 아마 더 많이 있겠죠. 다만 그런 일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제가 재즈계의 대표성을 가지고 말해도 되나 하는 부분이 조금 조심스럽기도 해요.


배: 글쎄, 우리가 대표성을 가지고 있어서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다양한 계기와 기회가 있어서 온 거고, 김광현 편집장님이 우리를 선택하셨으니까. (전원 웃음) 이런 문제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고, 부소장님 만나서 이야기도 해보고 싶었으니까 온 거죠. 그런 걸 문제로 삼으면 설득시킬 이유도 없어요.




성 인식이 부족한 예술 문화계의 현실


남: 전체적인 흐름과 함께 재즈계에서도 미투 운동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어요. 이로 인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많은 분들이 과거에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했을 거라고 봐요. 이런 건 미투 운동의 좋은 효과인 것 같아요. 한편으론 미투 발언을 하신 분들에게 2차 피해 같은 것들이 생겨나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가장 크게는 음악을 더는 못하게 될 것을, 생업을 포기할 것을 각오한다는 거죠. 그런데 과연 이게 생업을 포기할 정도의 일일까, 이걸로 왜 생업을 포기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가해자와 관련된 사람들은, 본인이 가해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연이 취소되면서 경제적인 피해를 볼 수도 있고요. 이런 것들을 보니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어요.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을 해야 하는지. 이런 거들을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김: 저는 그런 상황이 역설적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종합적인 존재잖아요. 음악을 할 때는 동료이고, 작품 활동을 할 때는 협업자이기도 하죠. 그러다가 성폭력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너 이렇게 하지 마”,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요. 사람의 전체가 아니라, 행위에 한 것에 대해서 처벌을 받을 수도, 사과를 할 수도, 보상을 할 수도 있어야 해요. 그런데 행동이 아닌 존재에 대한 문제로 간 것 같아요. 이 사람은 누군가를 만질 수 있고, 누군가에게 음담패설을 할 수 있고, 자신의 많은 성 경험을 과시할 수 있고, 내가 누군가를 불러낼 수 있고... 이러한 행위를 하는 게 ‘나’라고 자신을 규정하는 거예요.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음악계에서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존재 자체를 고민하게 되는 상황인 거죠. 그렇다 보니까, 자신의 존재를 걸고 이야기해야 하고, 가해자의 존재를 날리는 정도로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부담이 있는 게 아닐까 해요. 지금은 이런 무게로 되어 있는 상황이에요.


남: 잘못된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김: 그 ‘우리는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왜 말을 하지 못했을까’라는 게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에요. 법적으로도 그래요. 가령, 음주운전을 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 처벌을 해야 하는 건데 성폭력에 관해서는 그렇게 되지 못했던 거죠. 법을 규칙적이고 일관되게 적용됐더라면, 이런 일이 덜 발생했겠죠. 그런데 그렇지 않아 왔던 거예요. 고발은 당한 사람은, 그 사람의 존재에 따라 죄를 깎아줘요. 가령, 업계에 대한 기여도, 후배들의 지지를 담은 탄원서, 평범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한 연금보험 가입서라든지 가족사진 같은 것을 내면 죄의 무게를 덜어줘요. 그렇다 보니 그 사람에게서 죄가 분리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 고발한 사람은 굉장히 부담스러워져요. 그러니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것 같아요.

아까도 이야기하셨지만, 전체적으로 시민성이 많이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법이 있지만, 나는 음악만 알아”가 아니에요. 법과 제도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해요. 내가 음악을 하든, 국가대표 운동선수든, 정치인이든 모든 법은 공평하게 적용받아야 하는 거예요. ‘나도 시민 중 한 명이다’라는 생각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지금도 문화계를 보면, “나는 순수한 시인이었어”, “나는 소설을 쓰던 사람인데”라는 대답을 해요. 그건 성폭력을 했다는 의혹에 대한 응답이 아닌 동문서답이잖아요. 그런 상황이 된 거예요.




배: 술자리에서 성폭력을 자주 목격했어요. “이건 성폭력이고, 하면 안 된다”라고 했을 때 “오빤 음악만 해서 그런 거 몰라”라는 말을 해요. 농담이 아니라 너무나 진지하게 해요. 더 이상의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어요. 제게 “너는 공부해서 알겠지만...”이라고 해요. 물론, 제가 대학과 사회에서 배운 게 있겠지만, 그전에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불쾌감을 느꼈던 문제예요. 불쾌감이란 게 공부해서 배우는 게 아니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공부해서 아는 게 아닌데 그것을 공부와 학문, 시민 단체라든지 정치적 것과 엮어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예술을 하건 안 하건, 그 사람의 계급이 어디에 있건 간에 전반적인 시민성이 굉장히 떨어져 있는 상태예요. 피해자들도 “제가 페미니스트가 아닌데, 어떻게 고발을 해요”라는 식으로 특정한 자격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게 사회 전반에 깔려 있어요. 예술계에는 그런 특수성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김: 10년 전에 스포츠계의 성폭력이 굉장히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어요. 합숙훈련을 할 때 코치가 특정 학생 선수를 찍어서 숙소로 부르고요. 그때 나온 이슈 중에는 처벌에 관한 것도 있었지만, 왜 학교 수업을 다 빼고 체육만 시키느냐는 문제가 있었어요. 국어, 영어, 역사, 사회 같은 기본적으로 배워야 하는 수업을 듣고 알아야, 자신의 권리가 뭔지, 타인이 뭔지,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 속에서 나는 어떤 계층에 속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게 돼요. 이런 ‘사회적인 문해력’을 배우지 않더라도 운동을 잘하면 괜찮은 거라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본인도, 부모도, 교사도 이 문제에 대해 감시한 사람이 없었던 거예요. 그때 성폭력 대책 중 하나가 수업시간 보장이었어요. 성적 위주의 엘리트 스포츠가 사람을 시민성에서 무력한 상태로 만들어요.


남: 음악과 예술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예술을 하잖아’나 ‘음악을 하잖아’로 면책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예술을 하는 사람에겐 일탈적인 행동이 너무 관대해요. 또 예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음악 하는 사람이니까’라는 인식이 있고, 이게 학생들에게 재생산이 되고요. 그런 것들이 계속 악순환이 되는 것 같아요.


김: 그럼 음악계에 있는 여성들은 이런 것들을 ‘쿨’하게 받거나 받아치고 넘어가야 하는데,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여기기도 하나요?


배: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억울하면 네가 음악으로 성공해. 저 형보다 유명해져라”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한 번은 제가 “저 오빠 왜 저래?”라고 물은 날이 있었어요. 웃긴 게 저만 안 만지더라고요. ‘덜 섹시’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 자리에 있던 여자들을) 살펴봤는데, 저는 세 보이고(?),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엮여 있고, 시선을 피하지 않았던 거죠. 자연스럽게 그 사람은 누구를 만질지, 누구를 만지지 않을지를 정해둔 거였어요. 저런 행동은 자연스러운 흥미와 장난이 아니라고 말하면 대답하지 않아요. 머리 아프다고 해요. 그렇게 억울하고 싸우고 싶으면, 음악으로 유명해지라고 해요. 그런 말을 들으면 모멸감이 들어요. ‘나는 음악으로 유명하지 않아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걸까?’라는 생각에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건 별개인 거잖아요. 가해자는 음악으로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떠한 행동에 대해 용서를 받듯이, 피해자는 음악적으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할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거죠. 그런 ‘파워 게임’으로 환원시켜버리는 게 음악계에선 일반적이에요.


김: 그러면 그거는 예술의 순수성도 아닌 거네요.


배: 전혀 아니죠.


김: 이게 정말 예술에 순수하고, 마음이 순수하고, 관계에 대해서 관대하고 자연스러운 거여서, 인간의 성과 접촉과 친밀함에 대해 열려 있어서, 그게 음악적인 영감이 되어서라면... 이성이든 동성이든 나이든 국경이든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닌 거잖아요. 상대를 고르죠.


배: 물론, 나이 많고 유명한 여성 뮤지션들은 안 당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주로 학생이 타깃이 되어요. 패턴이 똑같아요. “나와 작업하자”라고 해요. 유명한 사람들과의 작업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배우는 게 있을 거란 기대를 하게 되죠. 그런 뒤에는 사람들이 “너 저 형 만지는 거로 유명한 거 몰랐어? 알면서 나갔잖아. 저번에도 한 번 만졌는데, 술자리에 또 나갔잖아. 너도 기대하는 게 있었을 거 아니야. 그럼 너희가 똑같아”가 되어요. 그렇게 악순환이 되는 거예요.

이윤택 사태처럼 드라마틱한 사건을 보면서 “우린 저 정도는 아니야”라는 식으로 말해요. 그 정도가 아니면 성폭력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 게 만연해요. 일상에 깔려 있는 이런 사고들이 좀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남: 가해자의 실명을 밝혀야 하는가가 지금 재즈계 미투 운동의 주요 화두 중 하나예요.


김: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실명을 밝히고, 자신의 모습도 대중매체에 드러내고 있잖아요.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기존의 권력 관계가 깨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게 하려면 움찔하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제까지의 법과 제도, 사회적인 실천에는 그런 힘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오랫동안 깨지지 않았어요. 많은 가해자들이 권력형이라고 하잖아요. 그들의 명예, 실력, 낸 앨범들, 인지도 등을 가지고 했던 행동들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으면 그러한 힘이 깨지지 않는 거예요. 결국, 피해자들은 많은데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계속 은밀하게 일대일로 진행이 되는 거예요. 이 사람을 감시하는 방법은 내가 여러 명이 되는 방법밖에는 없어요. 내가 갑자기 유명해지고, 앨범을 여러 장 내고 할 수는 없잖아요.

미투에는 기존의 권력 관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가해자들은 다시 일대일 상태로 만들어서 역고소도 하고, 명예훼손 고소도 하고, 사실관계도 따져서 ‘알고 보니 저 여자가 이런 의도가 있었다’는 식의 이미지도 만들어내요. 아무런 권력 관계나 배경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요. 이런 것들을 계속 시도할 거예요. 그게 합리적인 거고, 이게 제도에 따른 것인 것처럼 몰아가면서 일대일 상황으로 갈 거예요.


남: 그런데 실명을 밝혀서 2차적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해요. 그렇다면, 내가 만약 미투 운동에 동참하려고 할 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2차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것일까요?


김: 이 질문에 저는 두 가지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고 봐요. 첫 번째는 저 사람의 권력 상태에 대해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고, 또 하나는 내가 개인으로 법적 역고소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준비해야 해요. 일단, 개인이 되었을 때는 자기 자신이 증인이잖아요. 자신의 경험에 대해 명확히 말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완벽하지 않으니, 잘 기록해두세요. 그리고 자신을 믿으세요. 기억을 일관되게 정리해보는 게 도움이 돼요. 나중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더라도, 그때 그걸 왜 성폭력으로 여겨졌는지를 잘 설명할 수 있으면 무죄가 될 수 있어요.

가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한다고 해서 모두 다 벌금형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래도 그들은 하죠. 왜냐하면 ‘저 여성이 무고한 나를 몰아갔다’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요. ‘지금 이뤄지고 있는 싸움에서 나는 예외다’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서예요. 성폭력 피해를 겪은 사람을 도와주는 무료 법률 변호사 지원 같은 제도가 있어요. 경찰서에 갈 때도 동행도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경찰이 자신의 진술을 왜곡되게 진술하면 다시 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것들을 잘 모르시잖아요. 성폭력상담소에서 먼저 도움을 받으시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전국 곳곳에 있어요.

첫 번째에 대해서는 이 업계의 특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줄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좋아요. 업계에서 왜 성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언어’를 만들어갈 사람이 필요해요. 그동안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러한 것들을 목격하고 경험한 이들이 함께하는 게 큰 도움이 돼요.




남: 피해자들이 가해자에 대한 법적인 처벌을 받길 원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기억을 잘 정리하라고 하셨는데, 진술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할까요?


김: 만나러 가기 전까지 왜 망설였다거나 다른 친구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거나, 다음날 기분이 안 좋아서 가족들에게 짜증을 냈다든지 하는 나의 흔적들이 있어요. 이런 것들을 나를 설명해주는 거거든요. CCTV를 확인하는 건 단순히 함께 갔는지를 확인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걸음걸이로 갔는지, 어떻게 실랑이를 했는지, 어떤 망설임이 있었는지를 찾아내는 과정이기도 해요.

성폭력이나 준강간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술을 먹고 일어나봤더니, 누군가와 잔 거예요. 당황하고 무서운 척하면 없어 보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대방이 ‘잘 들어갔냐’는 물음에 적당히 대답해요. 이게 괜찮았다는 뜻은 아니에요. 그때 “꺼져”라고 답하기 어려운 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이나 이후나 마찬가지인 거예요. 한샘 사건을 보면, 모텔에서 나와서 왜 메시지를 주고받았냐고 문제를 제기해요. 그 카카오톡에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모텔에서 쉬었다 가자고 계속 몰아갈 때 어디서 딱 자르지 못한 상황과 같아요. 그런 앞뒤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는 거예요.

가령 비슷한 상황에서 센 척을 하기 위해 괜찮다고 답했다고 하더라도,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요. 관련 사례로 세입자가 수도를 망가뜨린 일이 있어요. 집주인이 ‘수리비를 줄여줄 테니 성관계를 하자’고 한 거예요. 집주인은 칼 같은 흉기로 위협한 게 아니죠. 1심에서는 성폭력이 아니라고 나왔는데, 2심에서는 이 여성이 가진 경제적 조건을 비롯한 요인들이 자신의 성적인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했다고 인정해서 성폭력으로 유죄판결이 됐어요. 그렇게 상황이 설명되어야 해요.


남: 그런 게 증거가 될 수가 있군요. 그렇다면 증거를 확보하는 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김: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진료를 받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필요하고요. 주고받은 연락들, 조금 늦더라도 가해자에게 그런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확실하고 강하게 할 수 있으면 좋아요. 나로서 왜 그렇게 해야 했던 어쩔 수 없었던 상황에 대한 나의 심정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표현했던 것들이 정황을 설명하고요. 성폭력상담소의 무료법률상담을 먼저 받는 것도 좋아요. 경찰에 가셨을 때는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받으시고요.




우리는 관찰자가 아니다


배: 주변인이 참여하면 “네 문제도 아닌데, 왜 그래?”라는 반응도 나와요. 그렇다고 제가 피해자한테 가서 “고소하자”라고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피해자가 그 문제에 피로를 느껴서 묻고 싶은데, 그게 그 사람에게 최선이라면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봐요. “네 일 아니야”, “그 형 장난하는 거야”, “걔도 웃었는데, 네가 왜?”라고 했을 때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김: <악어 프로젝트>라는 프랑스 작가가 쓴 만화책이 있어요. 자기가 수많은 여자 친구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고, 그래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이 뜨였다는 거예요. 그 만화책에 가해자들의 모습은 모두 악어예요. 소수이기는 하지만 여자 악어도 있어요. 미묘한 것들을 잘 담긴 책이에요. 책의 뒤에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어요. 거기서 이런 장면이 있어요. 길을 가다가 데이트 폭력을 당하는 상황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가서 “괜찮으세요?”, “제가 도와드릴까요?”라고 한다는 거예요. 제3자가 나타나서 “고발해줄까?”라고 했을 때 “네! 이 새끼를 당장 신고해주세요!”라고 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자기가 먼저 했을 거라는 내용이에요. 그렇게 피해자에게 묻기보다는 가해자를 제재하라고 해요. 피해자를 ‘도와준다’기보다는 사회적인 제재를 해야 한다는 거지요. 시민으로서의 개입으로요. 이런 폭력 상황에 대한 시민으로서의 제재를 일상적으로 잘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나요?  


배: 뮤지션 남자 동료들과도 이런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이 친구들은 ‘형들'이라고 표현되는 사람들이 구축한 견고하지만 암묵적인 업계의 '룰'이 두려운 거예요. 룰에 이의를 제기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신은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그게 생존과 연관이 되니 다른 이의 문제뿐 아니라 당사자의 문제마저도 묵인하게 되는 거죠. 자신이 개입하면 피해자가 더 수치심을 느낄 거라고도 생각하고요. 많은 뮤지션들이 비슷한 생각을 할 거라 생각해요. 앞에서 부소장님이 말씀하셨듯 그게 시민성을 바탕으로 일과 별개로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말하는 자'는 조직에 위해를 가하는 자가 돼 버리거든요. 물론 그 와중에 주변 남자 뮤지션들이 술자리에서 바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여자들에 대해서도 미투 이후 생각이 많이 바뀐 분들이 많아요.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생각부터, 피해자들이 단순히 싫지 않아서 가만히 있던 것이 아니구나, 죄지으면 언젠가 벌 받는구나(?) 같은 것들이요.


남: 저도 공감해요. 저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어요. 본래 성격이 소심해서 말을 잘 못 하는 것도 있지만, 선배나 동료의 대부분이 이런 일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저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군가가 잘못된 행동을 하더라도 “아휴, 왜 이러세요” 하며 웃고 넘기는 게 쿨한 태도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방식이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배: 사실, 그게 문제인 거예요. 문화계가 조용한 이유는 그 가해자가 자기 지인이나 자기 자신일 수가 있어서예요. 하지만 그 공포와 잘못한 부분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주변 남자들에게 제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들도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분명히 잘못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다면 과정이 괴로울지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에요. 문제라는 건 절대 사라질 수 없거든요. 내버려 두면 어딘가에서 곪을 뿐. 누굴 더 사랑하고 보호할 것이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김: 너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 표현으로 ‘공지사항’이라고 해요. 규칙이 되어야 해요. 그건 경찰서나 법원에 있는 법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야 하는데, 실은 임의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의 영역에 던져져 있어요. 그런데 해석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언어에 균형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언어에 균형이 없는 거예요. 가해자들이 “그 여자가 야한 옷을 입어서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라는 식의 말을 너무 많이 해요. 이런 자의적인 말들, 해석의 말들과 싸우려다 보니까 ‘피해자 관점’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피해자의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실체적인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말이 등장하는 이유예요.

그런데 이런 해석의 영역에 빠지면 해결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래서 ‘펜스 룰’이라는 말이 나오고, 함께 일하지 않겠다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이건 룰과 공지사항이 싫다는 말이에요. 룰이 자리를 잡으면 두 개의 관점이 싸우기 이전에 잘못된 것을 ‘공지’할 수 있게 돼요. 학생들이 입학하기 전에, 밴드 마스터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공지사항’을 만들고 공지할 수 있으면 좋겠죠.


배: 그게 가족이 되었든 지인이 되었든, 자의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똑같이 적용해야 하는 거죠.


김: 음악계나 재즈계가 한목소리로 무엇에 대해 사회적인 발언을 하거나, 지지/공감을 할 때도 있지요?


배: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선생님(선배)들이 먼저, 그리고 함께해주셔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음악가들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도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아직 후배고, 아직 유명하지 않은데, 나댄다. 음악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가령, 내가 아직 재즈계의 대표성을 지닌 음악가가 아니고, 나이도 어리고, 내 위에 쟁쟁한 선배들도 가만히 계시는데, 내가 이 문제를 자정하자는 식으로 발언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위에 계신 선배들이 목소리를 내주면 큰 추진력을 얻을 거예요. ‘음악에는 선후배 없고 잘하는 사람이 우선이야’라고도 말하지만, 자기 스스로 만족스러운 뮤지션이라고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기는 힘든 거죠.


김: 지금 미투 운동은 ‘성폭력이 벌어지고 있던 순간에 나란 존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각자가 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봐요. 자신과 전혀 무관하다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사람의 주변에도 분명 성폭력이 있었을 거예요. 다만, 피해자가 도움을 청할 사람이 아니었거나, 그런 상황을 보지 못했거나, 혹은 봤어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겠죠. 피해자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그냥 잊자’라는 식으로 말하는 건 또 말하지 못하는 시간을 강요하는, 은폐가 될 수 있겠지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세요. 그 문제에 무관심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도움을 청한 순간 당신은 그 문제의 주인공 중 하나로 초대가 된 것이고, 거기에 등장해야 하는 시점이 된 거예요. 그 문제에 공감을 하고, 함께 고민을 한다면 그건 전혀 다른 행동이 될 거예요.  




김혜정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예술을 동경하고, 약자들이 만드는, 약자들을 위한

더 좋은 음악이 흐르기를 바라고 있다.


남예지 | 글 쓰는 재즈 보컬리스트

노래를 주로 부르지만, 앞으로는 멋진 글을 쓰고 싶은 꿈이 있다.


배샛별 | 대중음악가

비정규직 노래 레스너입니다. 앨범 조회수보다 브런치 연애칼럼

<망한 연애가 준 뼈아픈 교훈>의 조회수에 연연합니다.




사단법인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소 서울시 마포구 성지1길 32-42(합정동), 2층

문의 02-338-2890~1

후원계좌 우리은행 441-04-107528

문자후원 #2540-1991 (건당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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