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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칼라 블레이, 나는 바로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작성자 JAZZ PEOPLE(ip:)

작성일 2016-07-08

조회 2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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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칼라 블레이,

나는 바로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유학 첫 해, 그러니까 1984년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보스턴에서 먼저 공부를 하고 있던 선배는 가을 학기 전까지 갈 곳 없던 나와 내 동료에게 자신의 좁은 아파트에 잠시 머물게 해주었다. 당연히 선배와는 음악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어느 날 선배는 하이럼 블록 얘기를 꺼내려고 그해에 나왔던 칼라 블레이의 앨범 [Heavy Heart]를 들려주었다. 선배가 그 앨범을 들고 거실로 나오던 때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LP에는 매력적인 여자가 멋진 헤어스타일로 눈을 살짝 가린 채 자신만만한 포즈로 서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 턴테이블에서 플레이되기 시작하고 나는 바로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  


그해 가을부터 룸메이트와 조그만 아파트를 얻어 서울에서 보다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아침 동이 틀 때까지 음악을 듣곤 했는데 [Heavy Heart] 앨범은 그 모든 새벽에 우리를 아주 깊은 우울로 데려가곤 했다. A면은 그런대로 흐느적거리며 듣다가도 늘 B면으로 LP를 뒤집고 나면 점점 깊은숨을 몰아쉬며 그녀가 데려가는 그 끝없는 바닥으로 속절없이 끌려가던 생각이 난다. 그 시절에는 수업 중 칼라 블레이의 얘기가 나오면 음악 얘기뿐만 아니라 그녀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까지도 좀 더 귀 기울이게 되고 그녀와 지냈다는 그 굉장한 남편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권위 있는 잡지 다운비트가 칼라 블레이의 빅밴드 편곡에 특별한 상을 줄 때마다 예전 앨범까지 찾아들으며 더 깊은 우울함에 기꺼이 빠져들고는 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고 엔지니어링을 전공하고 뉴욕의 스튜디오에서 인턴십을 하던 후배에게서 그곳으로 녹음하러 온 칼라 블레이를 만나 나눈 얘기를 전해 들었다. 후배는 자신이 좋아하는 칼라 블레이의 앨범 [Sextet]에 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고 하면서 “재즈 팬들이 [Sextet] 앨범이 나의 이전 작품에 비해 조금 가벼워졌다는 평을 하는 걸 알고 있어요”라는 그녀의 얘기를 전해 주었다. 그녀는 “난, 그 라이트함(Lightness)에 배어있는 잔잔한 일상 속의 아쉬움과 그리움을 표현해 냈고 앨범에 매우 만족해요”라는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Sextet] 앨범에서 좋아하는 곡은 ‘Brooklyn Bridge’와 ‘Lawns’이다. 칼라 블레이의 음악들을 정말 많이 듣고 권하고 녹음해서 선물해 주웠는데 사람들이 가장 많이 좋아했던 곡 또한 ‘Lawns’였다. 여러 멋진 곡들이 있지만 아마도 이 곡이 우리의 정서에 어떤 보편적인 울림을 주었던 것 같다.


그녀는 초기작품에서 작곡자와 편곡자 역할을 하며 피아노 보다는 오르간을 더 자주 연주했다. 미국에서 봤던 공연에서는 하몬드 B3 오르간 위에 와인을 병 채 올려놓고서는 원피스에 예쁜 구두를 신고 흐느적거리며 멋진 소리와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는 했다. 피아노는 당시 단연 두각을 나타내던 케니 커클랜드(Kenny Kirkland, [Heavy Heart])와 래리 윌리스(Larry Willis, [Sextet])가 멋진 연주를 해주었고 늘 함께였던 하이럼 블록의 기타도 좋아하게 되었다.


2003년도 칼라 블레이의 첫 내한공연은 그해 보았던 제일 멋진 공연이었다. 단정한 재킷과 예쁜 단화를 신고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름다운 곡들을 연주해 주었다. 칼라 블레이의 소울메이트인 스티브 스왈로우와 낸 듀오앨범 [Are We There Yet?](1999)에서는 아마도 칼라 블레이만이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두텁고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를 내주어 이 앨범도 자주 듣는다.


올해로 칼라 블레이가 80번째 생일은 맞이한다고 한다. 내가 그녀를 알았을 때가 30여 년 전이다. 첫 만남의 순간부터 지금껏 늘 마음속에, 그리고 내 음악에 칼라 블레이가 있다. 아직도 누군가 내 음악에 대해 물어왔을 때 특히, 작곡에 대한 영감에 대해 얘기할 때 늘 빠짐없이 얘기를 하게 되는 음악인이 바로 칼라 블레이이다. 나의 2집 [Mr. Moon Light]에 수록된 ‘마리아의 눈물’은 그녀를 생각하며 그녀의 음악 언어로 쓴 곡이고, 마침 봄여름가을겨을 공연차 한국을 방문했던 트롬보니스트 게리 발렌테(Gary Valente)의 연주로 조금 더 칼라 블레이의 색을 입힐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이미 지구에 와서 해야 할 역할을 다 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어린 시절 음악을 좋아해 무작정 음악인들이 많이 모이는 도시로 와서 그들과 부대끼며 치룬 힘든 사랑과 상처를 나누며 좀 더 행복한 노년을 맞았으면 좋겠다. 그녀의 음악으로 인생이 좀 더 풍요로워진 우리의 사랑도 느끼며.  




정원영 | 호원대 실용음악과 교수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는 전천후 건반주자이자 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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