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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리운 그대의 모습 나를 부르며 멀어 가네

작성자 JAZZ PEOPLE(ip:)

작성일 2021-08-22

조회 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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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글 Moon(혜원)


그리운 그대의 모습 나를 부르며 멀어 가네


우리 재즈 아티스트들이 사랑하는 곡 중에 ‘Estate’라는 곡이 있다. ‘여름’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으로, 뜨거운 여름을 사랑의 대상에 빗대어 표현한 곡인데, 노랫말이 참으로 서정적이고 아름답다. 이런 말들을 엮어서 여름을 표현하다니, 이것이 바로 예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클럽에서 노래할 때 자주 꺼내 부르던 곡으로, 여름에는 여름이니까 부르고, 또 다른 계절에는 여름을 떠올리며 불렀다. 언제든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듣고 부를 때면 금세 코끝에 여름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 곡을 처음 듣고 부른 것은 꽤 오래전, 우리나라 재즈 보컬리스트들을 비롯한 연주자들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재즈 클럽 ‘야누스’에서였다. 그곳에 가면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 선생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까닭에 선생님의 팬들이 자주 찾아 왔었고, 나처럼 막 재즈에 빠져 열병을 앓고 있던 새내기들은 현장에서 재즈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의 장소였다. 


선생님께서는 거의 사전 정도의, 아주 두꺼운 레퍼토리 북을 가지고 계셨는데, 그때만 해도 지금과는 시절이 달라서 모두가 종이로 된 악보를 보는 것이 당연했다. 매일 매일 새로 연습한 곡들의 악보를 잉크 펜으로 오선지에 그리며,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많은 곡을 부를 수 있는 보컬리스트가 되어야지’ 꿈을 꾸었던 그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 나는 선생님의 그 두껍고, 빛바랜 악보들. 그중에서도 나는 선생님께서 부르시던 ‘Estate’를 처음 듣고 홀딱 반해버려서 언젠가는 나도 꼭 불러 보리라 다짐했었다. 




야누스라는 공간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매주 노래를 해왔고, 만약 그 시절 내가 그 공간에 함께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또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져 나오는 음악의 홍수 속에서 재즈라는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이유가 우리 재즈 아티스트들을, 그리고 직속 후배들이었던 재즈 보컬리스트들을 따스하게 감싸주시고, 때로는 약이 되라고 애정 어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박성연 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일것이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가 시작된 지 2년째가 되었다. 작년, 2020년만 해도 여름쯤 되면 진정될 것이라는 희망의 목소리가 많았고, 나 또한 그렇게 되리라 믿어 왔었다. 건강 악화로 병원에 계셨던 선생님께는 종종 상황이 좀 나아지면 이전처럼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전화로 선생님께 안부를 묻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다.


시간이 흘러 눈 밑까지 푹 눌러쓴 마스크 안으로 뜨거운 숨이 차오르고, 흐르는 땀에 얼굴이 젖어버릴 정도로 더운 여름이 되었지만, 코로나19는 조금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뜨거웠던 여름, 우리는 여름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재즈만을 사랑하셨던 박성연 선생님을 떠나보냈다. 


Moon(혜원)과 박성연


가끔 어떤 상황들에 직면하면 ‘인간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하는 조금은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되는데 나의 경우, 내 곁에 소중한 이들이 언제까지나 함께 할 것만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머리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지, 이별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머리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겨우 깨달은 후에도,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이란 참 어렵다.


동료 연주자들과 선생님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 나는 선생님의 꿈을 꿨다. 꿈이야 거의 매일 꾸는 것이라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편인데, 선생님을 꿈에서 만난 것은 처음인 데다가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여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다. 


꿈속에서 나는 선생님과 예전처럼 같이 드라이브도 하고 함께 식사도 했다. 선생님께서는 매우 멋진 모습으로, 마치 내가 처음 재즈를 부르기 시작하고 야누스 무대에 섰던 그때처럼 미소를 지으시며 내 앞에 서 계셨다. 옆에는 바퀴 달린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세워두고 계셨다. 의아해하는 나를 향해 그 멋진 미소와 함께 “혜원아, 나 이제 갈게!”라고 말씀 하시고는 뒤돌아가셨다. 생전에도 워낙 강단 있는 성격이셨던 선생님께서 꿈에 그런 모습으로 나오신 것은 생각해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미련 없이 뒤돌아서 큰 가방을 끌고 가시는 선생님의 뒤를 나는 잰걸음으로 쫓아가며, 선생님, 식사라도 하고 가시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그냥 그렇게, 떠나셨다. 순간처럼 느껴졌던 그 꿈에서 깬 나는 ‘선생님께서 나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고 가셨나 보다’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리움의 감정이 더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러하듯이 우리가 결정을 내리고 살아가는 데에는 어릴 적의 어떤 경험들이 크게 작용한다. 그것은 어떤 사건일 수도, 어떤 예술 작품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봤던 여러 아티스트들의 공연 영상이 그 역할을 해서 내가 지금도 음악을 듣고, 하는 데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지난 2007년 세계 3대 테너 중의 한 사람인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소식을 들은 나는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이 완전히 끝나 깊고 먼 기억 속으로 사라진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었다. 그리고 박성연 선생님도 나에게 그런 분이었다. 단순히 존경하는 아티스트, 나를 아끼고 소중히 대해 주셨던 분의 부재가 아닌, 선생님과 함께했던 과거의 내가 문을 닫고 기억 저편으로 떠나가는 느낌. 그 상실감. 


노래를 하면서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내가 느끼는 어떤 감정을 노래로 풀어내면서 사람들을 위로하기도 하고 동시에 나 스스로 위로받기도 한다는 점이다. 같은 곡을 불러도 내가 처한 상황과 감정이 그 노래를 지배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듣는 이들에게 커다란 에너지로 전달된다. 나는 선생님께서 작사, 작곡하신 ‘물안개’를 불러 보기로 마음먹었다. 선생님과 무대에서 노래했던 날들의 기억을 담아서 풀어내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선생님과 작별의 인사를 한 기분이 들었고, 이 좋은 곡을 선생님 살아 계실 때, 선생님께서 사랑하셨던 야누스 무대에서 불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혼란하고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 주어진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일구고 가꿔나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더욱 느끼며 살아간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인생 최고로 가슴 벅차오르는 일들, 가슴이 무너질 정도로 상처가 되는 일들,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 여러 가지 방향과 해답을 제시하는 기적 같은 일들을 겪는다. 


어느새 선생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시고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연하게도 남겨진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온 마음을 다해 노력 중임에도 불구하고 뜻하지 않은 결과에 낙담하는 날이 오기도 한다. 나 역시도 지난 한 해, 그리고 올해의 절반이 훌쩍 지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오늘도 힘이 빠지는 순간을 마주한다. 그럴수록 더욱 마음을 다잡고 가사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노래를 불러 보기도 한다. ‘고요히 지평선으로 스며드는 안개 속에 그리운 그대의 모습 나를 부르며 멀어 가네…’로 ‘물안개’의 가사는 끝을 맺는다. ‘멀어 가네’ 부분은 앞에서는 ‘다가오네’라는 가사로 채워져 있는데 이것이 선생님께서 생각하신 그리움과 삶의 모습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를 때마다 마음이 시큰하다. 그러면서 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능한 한 번이라도 더 부르며 사람들에게 알리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내가 선생님께 받은 애정에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선생님께 내가 받은 것은 보컬리스트로서의 정체성과 자존감, 재즈의 언어뿐만이 아니었다. 마음속에 자리한 그리움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방법 또한 선생님께서 주신 큰 가르침 중의 하나였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서는 이 곡을 부를 수 있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한 일이고 선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관해 물어보는 나에게 “그냥 잊히더라. 그렇지 않으면 살기 힘들지 않을까” 하고 나의 어머니는 얘기하신 적이 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 계속되는 이유일 것이다. 이별이라는 것이 언제까지 힘겹고 슬픈 일로만 남지 않는다는 것. 그 안에 남겨진 소중한 선물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떠나간 사람, 그리고 남겨진 사람의 삶은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박성연 선생님의 음악적 삶에 대한 글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에서 그런 부분보다는 내 개인적인 그리움을 써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애틋한 그리움의 표현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쉽지 않은 시간 들의 연속이지만 나는 오늘 중 가장 뜨거울 시간에 박성연 선생님의 목소리로 처음 들었던 ‘Estate’를, 그리고 선생님의 마음을 이어받아 ‘물안개’를 불러 보려고 한다. 그리고 언젠가 선생님께서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꿈에 또 한 번 들러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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